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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Oct 01. 2022

나 답다는 것

참 오랜만이었다. 자주 정동길을 걸었고 지금도 자주 걷고 좋아하는 길이지만 덕수궁안에 들어가본지는 참 오랜만이었다. 대학생이던 때, 언론사 준비를 하던 시절 글의 글감과 소재, 아이디어를 찾아 그냥 무작정 걷고 시립미술관 전시회도 보러가고 혼자만의 시간을 참 많이도 갖었었는데, 그때 덕수궁도 자주 찾았었다. 그때 당시 입장료가 1,000원이었는데, 지금도 1,000원이려나? 그래도 이삼천원으로 올랐겠지? 설레는 마음을 앉고 표를 끊었다. 어맛, 1,000원 그대로여서 한 번 놀랐고 풋풋하고 꿈많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나던 그 시절 초아.로 돌아가는 듯한 기시감에 흥분했다.


덕수궁 옆 던킨은 원래 작았었는데 대학친구 유림이와 자주 만나 대화하던 우리 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확장이 돼 꽤 큰 규모가 됐다. 그 시절 던킨이 훨씬 아늑했고 소박했고 좋았다. 무튼 매머드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꼭 시럽은 3방울은 넣어야 한다)을 테이크 아웃한 채 입장했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덕수궁 안은 한산했고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내 귀는 청량했고 곳곳에 보이는 수풀과 나무, 그린의 선명함이 내 눈을 맑게 했다. 와우. 정말 오랜만이다! 네 모습은 어쩜 그대로니. 변한 건 정말 나뿐인거니.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향유했고 덕수궁 안 곳곳을 빠짐없이 빼곡하게 밟고 내 눈에 다 담고서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내가 향한 곳은 교보문고다. 시청 광화문에 왔는데 교보문고를 잠깐이라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내게는 앙꼬 없는 찐빵같은 그런 류다.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허지웅 작가의 최소한의 이웃.을 읽어내려갔는데, 어른은 누구나 어른일 수 있지만 사람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문장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바퀴 지나다 내 눈을 확 끈 그림책을 하나 펴 들었다. 마치 책 표지 속 삽화가 내게 "이리로 와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홀린 듯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책을 폈다. 그림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림책이 주는 소소함과 담백함이 나는 그리도 좋다.


두 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야 말았는데 백희나 작가의 "장수탕 선녀님"과 "이상한 엄마"였다.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은 채 아주 맛깔나게 읽었다. 장수탕 선녀님을 읽다가는 어린 시절 엄마, 언니와 셋이서 꼭 일요일 오후면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나는 꼭 초코우유여야만 언니는 반드시 딸기우유여만 했던, 떼를 손수 빡빡 밀어주던 그 시절 내 엄마 영희 생각에 눈물이 질끔 나고야 말았다.


나이가 정말 들어가는 구나 싶은 것이. 나는 몇 해 전부터 왜이리도 그 시절 그 시절 하는지. 또 그 시절이 왜이리도 그립고 아련하고 아득한지... 나이듦이 결코 싫지 않은데도 나는 그렇게 옛 추억과 그 시절 나.를 한참을 그리워 하고 또 그리워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과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너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등등 여러 질문들과 한편으로는 다 부질없는 상념들이 날 붙잡기도 한다. 이럴 땐 그냥 그저 이런 생각이 잠시 머물다 가도록, 절로 알아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고선 집에 온 나는 어떤 일로 인해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제나의 전화 한통화에 쏟아내고야 말았고 한강시민공원을 잠시 걷다 집 앞 맥주집에서 맥주 한 잔에 인생을 노래하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녀에게 "내가 나이들어가는 건 괜찮아요... 근데 내가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는 건 동시에 우리 부모님 역시 나이가 들어가신다는 거잖아요. 요즘 아주 자주, 생각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구나.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면 참 슬퍼져요..."라고 말했다. 인생... 정말 찰나.구나. 그러니 우울해 할 시간이 어딨어!라는 생각까지.한다.


나는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무난했던 내 스무살, 이십대 시절도 생각나고 수족관을 나와 내 스스로 여기저기 두들겨보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던 참 한편으로는 무모할리만치 호기롭던 나의 삼십대 시절 역시 늘 생각한다. 분명한 건 어느 시절 하나 내.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정말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면 내가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라고 자꾸 내게 시련과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게 아닐까. 그게 맞다면 나는 이제는 정말 나답게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결국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내게 주어진 시련과 슬픔 고통과 상처를 이겨낸 경험이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국 다 살아지게 되어있다. 결국 다 지나간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가진 힘을 나는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다시 내 인생이라는 돛단배를 강물 위에 띄워 나아가야 한다. 노를 힘차게 저을 준비만 하면 되겠다. 준비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힘차게 항해할 것이다. 법정스님의 책을 읽다 법정스님이 사용한 시시로.라는 부사에 난 꽃히고 말았는데,


"그래 초아야, 시시로 내 안의 너를 들여다고 나답게, 내 취향 껏, 단출하게 평안하게 살아보자!"

인생, 찰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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