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집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이면 우산을 쓰지 않고 온전히 온몸에 비를 쫄딱, 흠뻑 맞고 하하하호호호하며 집으로 들어가야지.라는 다짐과 함께(나는 어릴적부터 비를 참 좋아했으며 여전히 그러하며 비를 쫄딱 맞는 것을 즐기는, 하늘 위를 올려다보며 쏟아지는 비를 내 얼굴 내 온 몸에 뚜닥뚜닥 뚝뚝 맞는 그 촉감과 그 소리와 그 기분에 쾌락을 느끼는 성미를 가졌다. 우산도 웬만하면 잘 쓰지 않는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육아로 바쁜 이슬이는 눈과 마음이 참 맑고 깨끗한 내 씨티동기이자 친구다. 이슬이를 딱 보자마자 아침까지만 해도 아주 많이 가라 앉아 있던, 침잠해 있던 내 감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우리는 못다한 아껴뒀던 이야기 보따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선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로 향했다. 오늘같이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는 날엔 광화문 Four B 창가자리가 제격이다. 내가 딱 비었으면 했던 자리가 남아있었고 자리를 잡은 뒤 우리는 서둘러 슈레드가 들어간 베이글과 무화과 크림치즈에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둘이 연신, "너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나 기분이 너무 좋아. 그리고 네가 너무 예뻐보인다." 하는가 하면 "결국은 사람이야 그지. 누구와 함께하느냐인 거지. 창밖 봐봐. 지금 모든 게 완벽하다." 참, 그녀의 결혼식 부캐를 내가 받았었다.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고 웃기도 조금은 변해버린 우리의 겉모습에 "우리 진짜 나이들었다."하기도. 그러나 나이듦이 결코 싫지 않다고. 나는 덧붙여 말했다. "우리 그대로야. 우리의 순수하고 맑았던 그 마음은 그대로야, 변한 건 우리 육신, 껍데기일뿐..."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해가며 공감해주며 그 시간과 공간 자체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해했다. 이슬이가 챙겨온 파라솔 같은(쨍한 주황색에 과장해서 파라솔 같이 큰 우산이었다)우산 하나를 나눠쓰며 비오는 거리를 산책했다. 행복은 순간순간 우리가 느끼는 기분.이라는 설명이 참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와 결이 같은,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에너지와 기쁨과 안정을 준다. 오늘 역시 내겐 아주 그런 날이었다. 나를 기분좋게 하는 것들이란... 내 삶, 내 일상 속 작은 하나 하나 그 자체들과 그 자체들의 연속 또는 크고 작은 내 삶의 스토리와 에피소드, 플롯의 집합, 교집합, 합집합 등등이라고 할까. 내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엄청난 것이 아니라, 결코 화려하거나 큰 것이 아니라 이런 단출함과 소소함과 사소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난 느낄 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내 삶이다.
이제 집에 돌아가서는 뭐할거야?라는 이슬이의 물음에 난, "가서 글 한편 쓰구. 나의 해방일지 보다가, 지브리 코쿠리코 언덕에서 볼 생각이야."라고 답했다. 나는 지브리 일본 애니매이션이나 일본의 가족영화를 볼 때 느끼는 그 특유의 편안함과 잔잔함을 사랑한다. 그래서 최소 열 번 이상 본 것이 많고 굳이 보지 않아도 일부러 틀어놓기도 한다. 무튼 아쉬운 친구와의 작별을 뒤로하고 나는 내가 말한대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며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우리네 이야기인지. 펜의 힘은 실로 참 강하다는 생각까지.
나에게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라하면 내게 행복을 주는 것들과 동의어다. 나는 생각보다 아주 자주 수시로 시시로 기분좋은 상태, 행복한 마음을 느끼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모든 것은 내 안의 나. 내 안의 참된 자아에 달렸다는 생각이다. 에고를 넘어선 내 참된 자아를 만나는 내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요즘 아주 강력하게, 올해 혹은 근래 이런 우울감과 불안감이 요즘처럼 밀려왔던 때가 있었던가. 이런적이 있었던가.했는데 이런 기분은 아주 간만인 것 같다. 지난 주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내 감정이 이리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미 지나간 일이며 나는 나를 다독여가며 잘 이겨낼 것이다.
오늘부터 아니 지금 이 시간부터 휴... 인생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구나.가 아니라 인생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구나.를 입에 달고 살기로 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 였던 오늘 내 하루, 그 자체로 완벽했고 힘을 내 다시 잘 살어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