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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Oct 05. 2022

나의 낭만  

나의 해방일지.를 처음 본 그제부터 무한반복 중인 곽진언의 일종의 고백. 쌀쌀맞지만 결코 밉지 않은, 싫지 않은, 도무지 서운하지 않은 가을 저녁 날씨에 흠뻑 젖은 것도 모자라 이 노래가사와 멜로디에 흠뻑 취해 버리고야 말았다. 올해 만난 최고의 취향저격 노래라 하겠다.  


옷을 얇게 입은터라 지하철역을 나오니 바깥공기는 생각보다 쌀쌀했고 추웠다.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바람마저 조금은 심하게 부는듯하니 다시 지하철역으로 돌아가야하나 했지만 한강시민공원쪽으로 향했다. 여의도역에서 집까지 걷는 그 길은 내가 아침 저녁으로 아주 자주 걷는 익숙한 코스다. 내 걸음으로는 삼십분 정도면 집 도착이다. 보행길과는 아주 조금 거리가 느껴지는 한강과 그 너머 조명으로 수놓아진, 빼곡히 보이는 화려하게 빛나는 고층 아파트와 도시의 빌딩, 그 너머너머 보이는 남산타워의 빨간 불빛까지...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만으로 This is Seoul. 내가 사는 이 곳이 곧 서울임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한다.


다소 늦은 밤 9시 20분 즈음... 그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아름다웠으며 완벽했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난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태연하게 검정색 이어폰을 양 쪽에 꼈고 곽진언의 일종의 고백을 재생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이미 우수에 젖은 상태... 원래같으면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오늘은 그냥 달리고 싶었다.


무작정 뛰고 싶은 날, 달리고 싶은 날. 오늘이 내게 그런 날이었음이 분명했다. 근래 마음이 뭐랄까. 헛헛하고 슬프고 이따금씩 괴로웠는데 내게 온 이 모든 감정을 빠르게 달리는 그 에너지에 모두 날려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 노래... 왜 이리 내 마음을 울리는 거지... 내 마음을 울리고 또 다른 에너지를 샘솟게 한 이 노래에, 참 고맙다는 생각까지.


나는 달리고 달렸다. 그러면서 마치 차를 타고 한강대교 위를 달릴 때 보이는 그 파노라마 장면을 보는 듯한, 아주 꼭 닮은 감정과 기분으로 나는 하염없이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 아니 달려야만 했다. 이제는 전혀 춥지 않았다. 쌀쌀했던 바깥공기가 상쾌하고 청량하고 시원하게 느껴졌을 뿐만아니라, 그 바람조차 공기조차 위로한다는 듯이 네 마음을 다 안다고 다 이해한다고 말해주는 듯 했고 그렇게 그들은 나와 함께 동행했다.


즉흥적으로 머리끈을 풀어헤쳤는데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그 움직임마저도 온전하게 느끼고 싶어했다. 한강은. 책이 내게 그러하듯, 언제나 조건없이 날 받아주고 안아주고 그 어깨를 아낌없이 내게 내어주는 존재다. 중간중간 보이는 가로등 사이 푸른 수풀과 나무들 또한 그 자체로 쌈빡하게 예쁘고 아름다웠다.


고백하건대, 달리기 직전까지만해도 노래와 함께 눈물이 찔끔 나면서 동시에 코를 훌쩍였는데 달린 후에는 지금 내가 흘리는 콧물이 눈물이 나서인지, 추워서 인지 나는 순간 혼란스러워 했고 그 별거 아닌 상황에 나는 웃음이 났다. 이마저도 어쩜... 낭만적인거니.


한껏 달리다 나는 잠시 텅빈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인지 오늘따라 유독 심술궃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우울하고 슬펐던 내 마음과는 전혀 무관하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서울의 아름다운 밤하늘과 어둠이 짙어 사방의 실루엣이 보일락말락하는 그런 다소 신비스러운 풍경들에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나... 이 낭만을 나는 있는 그대로 만끽했다.   


바람이 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이처럼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감각할 수 있어서 나는, 감사해했다. "하아... 오늘따라 유독 내 눈 앞에 펼쳐진 그 모든 것이 반짝이네. 아름답다. 그래, 초아야 지금 네가 느끼는 이 에너지와 바람, 공기... 얼마나 로맨틱하니. 감사하니." 내 두 손 가지런히 모아 간절히 기도했고 호흡했고 명상했고 그 현재에 고요하게 빠져들었다.


시간이 좀 지났을까. 눈을 떴고 자리를 훌훌 털고선 난 다시 내가 가야하는 길을 향해 달렸다. 집에 다다랐을 무렵. 어느새 내 안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기운이 올라오고 있음을 아니 이미 차올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휴. 다행이다. 마음엔 실체가 없고 형체가 없다. 내게 이따금씩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어쩌면 무.상태의, 존재하지 않는 별 거 아닌 마음일 수 있겠다. 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삶 속,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소소한 것들에서 내 삶을 통찰하고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매순간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기대되고 흥미롭고 짜릿하기까지 할 때가 많다. 파울로 코엘료의 글이 생각났다. "인생은 짜릿한 게임"이라고. 지금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을 꼽으라 하면 단연 이 말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인생은 짜릿한 게임이기에, 내게 주어지는 그 모든 것, 설령 그것이 고통이나 괴로움, 우울, 불안이라 할지라도 필연적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이라는 룰렛에서 진정한 게이머, 그리고 진정한 승자는 그 짜릿함을 즐기는 자.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또 나를 위로했다. 내 삶을 통찰하는 것 마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나의 낭만을 사랑한다. 오늘 역시 꼭 그런 날이었으며 내 삶이 낭만적이라고 느낄 수 있음에도 그저 감사하고 때로는 그 감정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Ma vie est Roman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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