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죽을 수 있다

by miu

아침 일찍 수영가기로 마음먹었건만,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몸은 매트리스 바닥에 털썩 달라붙어 움직일 기미가 전혀 없고 머릿속으로는 수영가야되는데... 아윽 피곤해... 결국 내 의지에게 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일어나자마자 커피가 극하게 당겨 아메리카노를 따뜻하게 내린 후 슈가도 2스푼 반(설탕을 꼭 넣어야 하는 취향을 가졌다) 넣어 소파에 앉았다.


어제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를 습격하다.를 읽은 탓인지. 빵이 먹고 싶어졌다. 치아바타와 페스츄리를 사왔다. 아침에 이미 커피 한 잔을 마셨건만 빵과의 완벽한 조화를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또 탄다. 빵 한 입, 아메리카노 한 모금 번갈아가며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했다.


큰 골격은 일.이라는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에서만큼은 나는 철저하게 취향저격의 상태로, 새롭게 보내려고 하는 편이다. 가령 커피를 사러 가는 길도 한 길이 아닌 빙 둘러 가더라도 새로운 길로 가보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같은 하루가 아닌 날마다 새로운, 쌈빡한, 즐거운, 재밌는, 맛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늦은 밤, 인생 후르츠를 다 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노부부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은 따뜻하게 데워진 소고기 스튜처럼, 꼭 그런 모양새였다. 인생이란 무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걸까. 산다는 건 뭘까. 평범한 소시민인 나에게 소소한 행복이란, 사랑이란, 삶이란 무엇인지를 맹렬하게 가르쳐준, 그들의 삶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찬란한 삶을 보여준 주인공 노부부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일본의 배우 키키 키린은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언젠가 죽는다고 아니라 이제는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라고 했다. 어제 읽은 그녀의 책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소스라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끌리쎼하지만 정말 맞는 말이며,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내 삶을 더 명료하게 선명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그렇다고 비관적이거나 염세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며, 키키 키린의 말처럼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망설일 수가 없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해.라는 문장이 수시로 날 찾아오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가끔은 내 세간살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한 개인의 짐이 그것도 삼십몇 년을 살아온 한 여자의 짐이 한 사람의 짐이 이리도 단출할 수가 있던가.하는데 어차피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닌가.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되었고 이 단출함이 오히려 내 의식을 깨어있게 하고 명료하게 해준다면야 어찌 이 단출함을 놓치겠는가.한다.

서른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땐 꼭 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혼잣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내 삶에 무심할 수가 없고 덤덤할 수가 없을 때가 더러 있다. 다 내려놓은 상태일 때가 솔직히 편하다. 뭐든 기대하지 않았을 때, 내려놓고 힘을 쭉 뺐을 때 희한하게 오히려 일이 잘 풀렸던 경험도 한몫한다. 어제 늦은 밤엔 그제 받은 꽃다발을 풀어헤치고 꽃병에 담아 놓았는데 지금 바라보고 있자니, 무튼 스타일링하는데에 나는 일가견이 있다.면서 혼자 흐뭇해하고 있는 중이다. 뭔들 어떠하리. 다 자기만족 자기 폼에 사는 거 아니던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좋아하면 잘하게 되지 않던가. 나는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다 만들어낸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고 테이블을 차리고 도시락을 예쁘게 싸는 행위를 할 때 찐 행복감을 느끼고 큰 몰입감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명료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나는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갖은 경험에서 쌓은 크고 작은 실패 덕분인지 이제는 서두르지 않고 가장 먼저 날 관찰하고 통찰한다. 그래야지만이 날카로운 판단이 서고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다음 나의 실행력은 말모다. 일사천리가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말 것. 그럴 때일수록 제3자처럼 그 문제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것. 나 자신을 먼저 알 것. 그다음엔 망설이지 말 것.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것. 분명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경험이 없다는 것. 어느 것 하나 날 성장시키지 않는 경험은 없다는 것.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것. 고독은 필연이라는 것. 삶에 무심한 태도가 내 삶에 득이 될 때가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앞으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에 망설이지 말자고 더욱 확고하게 마음먹은 요즘,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남은 내 삶, 어떤 그림들로 채워나가볼까. 그 위를 어떤 색들로 물들여가볼까.를 생각하는 내가 되었다.


인생은 그런 것.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직시하고 껴안으면 그만 인 것을. 그러면 자유로워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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