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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요리인

by miu

잠이 오자 않아 날을 꼬박 새웠다. 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내 인생 또 하나의 고비이자 기회 앞에서 신중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온 결과다. 내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아무리 애써봐도 예측되지도 예측할 수도 없거늘, 행여 내 선택으로 인해 다가올 결과가 불안했던 건지, 두려웠던 건지. 나의 실체 없는 불안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내 온몸은 이미 완벽하게 흠뻑 젖고야 말았다. 그 결과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수천 번 수 만 번의 선택을 해왔음에도 쉽사리 그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 20대 혹은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호기로웠고 대책이 없을 만큼 무모하기도, 용감한 선택들을 과감하게 했던 나였는데 요즘은 사실 조금 겁이 난다. 과연 나이 때문일까. 아직 오려면 몇 해 남은 마흔을 왜 그리도 쳐다보고 있는지... 그럴 때마다 거울을 보며 귀엽게 살짝 내 뺨을 두드린다. 다시 깨어있자! 정신 차려! 유일하게 나만이 내 자신에게 취할 수 있는 일종의 훈계랄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자 반사적으로 몸을 번쩍 일으키고야 말았는데 그때 시각은 4:52분이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양반다리에 두 손을 가지런히 중앙에 모아 내 가슴에 살짝 닿는 일, 명상하며 내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일이다. 무튼 나는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가. 진짜 너를 위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 무엇 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 내려질 내 결정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날을 샜지만 나도 모르게 삼십여분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나 보니 오전 6:52분. 부엌으로 갔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 사이, 창문을 열어젖혔다. 이부자리도 말끔하게 개어 정리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평소와는 다르게 믹스커피를 탈탈 털었다. 매일 아침 틀어놓는 뮤직 메이트에서, 오늘은 작곡가 그린웨일의 "Falling Rain"을 재생했고 내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됐고 멍하니 그곳을 한참을 바라보며 나만의 커피타임을 가졌다.


오늘 아침으로 뭘 먹을지를 잠시 생각했다. 요리란, 내가 하면 가장 기분 좋아지는 것들 중 하나인데, 요리는 내게 빛과 소금이며 날 파닥파닥 살아있게 한다. 기분이 다운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우울감이나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괴로움과 생각들이 날 지배할 때, 난 어김없이 부엌으로 향한다. 평소에도 직접 요리해 먹는 습관을 가지긴 했지만 이런 감정 들일 때 나는 유독 내 온 에너지를 내 요리에 내 그릇에 가득 담는다.


그럴 땐 아무런 생각 없이 도마 위에 호박, 가지, 양배추, 감자, 당근, 양파 등을 뚝딱뚝딱 썰어내는 소리, 지글지글 보글보글 자글자글 끓는 찌개 소리에 뚜껑이 팔그닥팔그닥 그 안의 건더기와 국물이 넘을락 말락하는 딱 그때 등등 나를 위해 요리하는 그 모든 과정과 소리에 집중하면 이내 날 괴롭히는 잡념은 사라지고 나만 남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요리는 그야말로 특별하지 않다. 우리가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는 것과 같은 그와 동등한 행위이자 생활이다. 그래서 내게 요리란, 생활과도 같다. 그러므로 매일 요리하는 나는 생활 요리인이 맞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는 매 번 설레고 다채롭고 향기롭다. 그에 반해 위한 요리는 그런 류의 설렘보다는 뭐랄까. 구수하게 잘 익은 청국장 같은 시골스럽고 삼삼하고 덤덤하고 담담하고 단조롭다. 나는 그 단출함이 좋아서 평소 나를 위한 상차림엔 그 맛을 빼놓지 않는다.


아침부터 작은 부엌 공간에서 사부작사부작 요리하니 그제서야 살 맛이 좀 났다. 감기 같은 불안감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밤을 설친 일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내 요리와 함께 다시 차분해졌고 덤덤해졌다. 생활 요리인이라서 좋은 점은, 음식을 내 기호와 취향에 맞게 간을 맞추고 요리하는 것처럼 일상에서 매일 매 초 매 분 느끼는 내 감정들을 골고루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리에 버터를 많이 넣는 편인데, 파리 살던 시절엔, 파리 모노프리(프랑스 유명 체인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요리용 버터가 저렴해서(가성비가 참 좋은) 자주 그 버터를 듬뿍 넣어 맛깔난 요리를 완성했는데, 한국에선 웬만한 버터는 그보다 배는 비싸서 그때만큼 듬뿍듬뿍 넣지는 못한다.


아침으로는 드미 바게트와 버터를 듬뿍 발라 갓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뚝딱이었는데, 문득 그 시절 나와 내가 살던 집, 곰살궂게 자주 내리던 파리의 비,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그 모든 게 추억됐고 그리워졌다.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 정말 맞다.


나는 이렇게 또 오늘 이 아침, 내 감정의 실타래에서 생활 요리인에서 파리 살 던 그 시절의 나로 이어지는 의식의 무작위함에 또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떠하랴. 내 생각이 맑아지고 개운해지고 비워졌으면 이보다 더 한 것이 있으랴. 이렇게 내 의식의 흐름대로 글 한편을 마치고 나면, 내 마음과 내 정신과 내 영혼과 내 생각은 훨훨 타오른 불씨에서 어느새 한 줌의 재가 되어 소멸되는 듯한, 짜릿함과 쾌감이 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날 살게 하는 치유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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