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가방 하나만 남았다 아니 남겼다. 차제에 가방을 모조리 정리했고 사용하지 않는, 설레지 않는 나중에 혹시 몰라.라며 차마 버리지 못했던 가방들까지 다 정리했다. 실은 백팩 1개, 미니 주머니백 1개를 포함하면 총 3개를 남겼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즉, 나의 데일리 가방은 올해 여름 H&M에서 산 테니스 라켓이 그려진 아이보리 천으로 된 에코백 하나다. 내 선택은 그리고 결국 가방이라고는 달랑 요것만 남겼다.
특색이라고는 일도 없지만 그냥 적당히 널찍한 오히려 내 물건을 빵빵하게 넣으면 넣을수록 멋이 나는 게다가 실용적이기까지한 내게는 요물이자 요술가방이다. 너무 밋밋해서 심심하게 생겨서 좋다.
소위 왓츠인마이백을 글로 서술하자면, 심플하다 못해 심플한데 무튼 이렇다.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버스에 타서도,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읽을 책 1권 내지 2권, 비타민C, 비타민 D(캔디케이스를 재활용해 그 안에 몇 알씩 넣고 다닌다), 호피무늬 지갑(파리에서 살 때 내 생일을 기념하여 내가 내게 한 선물이다), 텀블러... 이게 전부다. 평소 일하러 갈 때 그리고 주말에 도서관을 갈 때나, 단골 카페에 갈 때면 노트북을 추가로 챙긴다.
살림살이 포함, 옷가지가 조촐해서 단출해서 좋은 점은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헤매는 일은 절대 불가한 일이라는 점이며 한눈에 찾을 수 있다는 점인데, 소파에 앉아 내 방을 삥 둘러보다 보면 서른 중반 사람의 짐이 이리도 조촐할 수 있나. 하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것도 잠시, 이렇게 짐이 없어서야 어쩌면 원하면 얼마든지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자유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희한하게 언제부터인지 나는 옷이나 가방, 신발에 흥미를 잃었다. 흥미를 잃었다는 건 그것들에 대한 소유욕이 없어졌다는 말과 물건을 소비하거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크게 들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 내 취향의 것들을 보면 물론 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신중하게 이 물건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인지, 지금 내 공간에 들였을 때 어떨지.를 생각해보고 내 마음에 그런 마음이 일면 그때는 주저없이 산다.
그렇지만서도 옷이나 가방, 신발에는 여전히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신발도 운동화만 신은지 꽤 되었고 지금 있는 나이키 운동화 1개, 아디다스 운동화 1개, 뉴발란스 운동화 1개, 고백하건대 신발도 다 정리하고 지금은 딱 요 3개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없고 외려 3개나 된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차암 나란 여자... 하고 나의 행태에 나의 생각에 나의 태도에 실소를 금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옷과 가방 색도 굉장히 달라졌는데, 지금은 화려한 색은 마음이 그리 가지 않고 아이보리, 옅은 회색, 연한 팥색 등 이런 류의 단조롭고 담담하고 덤덤하고 무심한 색에 마음이 확 간다. 이런 류의 색을 가진 옷을 입으면 내 마음도 이들처럼 무심해지는 것 같아서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양말 색도 그레이, 베이지톤, 브라운, 검정 요렇게 4켤레가 전부인데... 그렇다고 내 일상과 삶이 궁상맞은 것은 아니고 그저 조촐하고 단출하다는 설명이 맞겠다. 누가 뭐래든 내가 불편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의 이런 라이프스타일과 태도가 나를 아주 편안하게 기분 좋게 만드는 걸 보면, 본래 내가 이런 취향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 내 정서와 내 정신이 요런 감성에 꼭 알맞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정신건강이 자주 취약해지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치밀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막차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맥도널드에 들렀다. 앱을 오랜만에 켰다. 오레오 맥플러리 하나, 프렌치프라이 M, 불고기 버거 단품 이렇게 주문했다. 각 1,000원(쿠폰 할인으로 득템했다)에 총 3,000원의 행복을 들고 집으로 왔다. 오면서는 고새를 참지 못하고 오레오 맥플러리를 호로록호로록 너무 맛있다며. 이런 게 행복 아니겠냐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한 입 한 입 참 맛있게 먹었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 먹은 상태. 이마저도 잘했다.며 금요일 저녁을 마무리했다.
참. 사실 일주일 전부터 긴 머리가 지루해 야단이 났었다. 갑자기 이렇게 싫증이 나기도 어려울 터인데 무튼 모든 면에서 변덕이 죽을 쑤는 변덕쟁이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이번 주 토요일에 너무 짧지 않은 단발머리를 할까. 층을 총총히 낸 머리로 변신해 볼까. 마음을 먹었건만, 새벽이 되니 "아니야, 즉흥적으로 머리를 잘라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후회했던 적이 좋았던 적보다 경험적으로 더 많았던 것으로 보아 잘 생각해보자."라고 가라앉았다. 변덕쟁이 맞다.
내일 머리를 자르게 될지 나는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일 머리를 자른다면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의 선택이었겠지.하고 말테며 머리를 자르지 않기로 했다고 해도, 이것 역시 그렇게 결정한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의 선택이지 뭐.하고 말테다.
내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일, 오픈하는 일.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크게 동요하는 일이 줄어든다. 그것에서 오는 그 무심함이란 오히려 나를 늘 깨어있게 하는 힘이 된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걸 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떤 생각과 태도와 철학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지...등등
나란 여자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제일 궁금해졌다. 자꾸만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작고 사소한 나의 평범한 일상에 내 취향을 더해 그저 나답게 조촐하게 단출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낭만이 됐다. 솔직히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게 인생 아니던가. 이렇게 나만의 낭만이 없었더라면 나는 더 자주 무너지고 더 많이 아파했을지도 모른다.
일찍 잠드는 나로서는 이 시간에 깨어있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다 이 시간까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고요하다는 생각인데. 가끔은 이런 새벽 3-4시의 중후한 고요가 내가 내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관찰하고 관조하고 통찰하기에 제격일 때가 있다. 무튼 다가오는 아침을 환영하려면, 지금 잠을 청해야 한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