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주는 기쁨

내공을 쌓는 일

by miu

아무렴 혼자 집에서 쉬기로 했다지만 그래도 설 기분은 잠깐 내보자는 생각에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질일인가.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잠이오지 않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침으로 먹을 떡국을 끓여 놓자고 부엌으로 향했다.


우리집 떡국은 닭고기 육수를 넣는다. 소고기를 넣은 탕국을 식혀 차갑게 먹는 것과 닭고기 육수를 넣은 떡국을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그렇게 먹어와서 익숙한 것도 있고 개인적인 입맛과 취향으로는 소고기 육수보다 닭고기 육수가 훨씬 감칠맛나고 맛있다.


떡국은 아침 1끼만 먹을 생각이므로, 미니 솥에 1인분 양만 끓이기로 했다. 닭고기 육수도 준비됐고 대파를 총총 썰었고 다진 마늘 조금, 간장 조금, 소금 조금 넣고 간을 맞췄다. 계란1개도 솔솔 풀었고 떡국도 조금 넣어 뚜껑을 닫고 한 번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 잘게 찢어 놓은 닭고기살도 올려주고 계란 지단도 올리고 김도 손으로 자잘하게 찢어 올렸다. 아침에 8시쯤 먹자 했건만 마침 배도 고팠고 뜨끈할 때 먹자 싶어 한 그릇퍼고선 호로록 호로록 먹었다. 다 먹고나니 새벽6시. 아주 맛깔나게 잘 먹었다.


떡국을 먹다, 이리도 혼자만의 시간이 짜릿하고 즐겁고 편안해서야...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이러고 있는 나를 목격하는 일이 나는 그저 즐겁다. 아차, 이 아침 책 주문도 마쳤다. 알랭드보통의 책 중에서 읽어보지 않은 책 2권을 중고서점을 통해 주문했다.


어맛. 세상에 책2권에 배송비 포함 6,000원이라니... 이런게 바로 득템아니겠냐며 이런 소비에 나는 매우 흡족해한다. 새책이나 혹은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곧장 교보로 달려가 직접 구매한다(꼭 광화문 교보로만 간다). 보통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 가끔 새책도 사고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중고서적을 통해 알뜰하게 구매하는 편이다. 나는 새책의 빠빳함이나 냄새, 감성보다는, 무언가 다소 낡은 듯한, 뭐가 묻어도 그마저도 나쁘지 않은, 헌 것이. 헌책에 더 마음이 간다.


그러고보니 아침부터 자잘하게 꽤 무언가를 한 모양새다. 나를 위한 떡국을 끓였고 책 주문도 알뜰하게 마쳤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이신 최진석 교수님의 짤막한 인터뷰도 찾아 보았다. 최진석 교수님의 인사이트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함석헌 선생의 말을 인용한 문장이었는데, "너만의 동굴을 가졌느냐?"였다. 내 대답은 "Yes!"


그러다 고독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늘 그렇듯 오늘은 "고독이 주는 기쁨"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이렇게 무언가 순간적으로 탁 내 뇌리를 스치는 제목이나 혹은 문장으로 과감없이 글을 써 내려가는 편이다.


서른 중반이 되니, "고독"이라는 단어에 대한 기존의 내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 어릴 땐, 불과 이십대 삼십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고독이란, 굉장히 부정적인 것, 외로운 것, 소외된 것.과 같은 그런 류의 의미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고독"이란 그런류가 아니라는 것임을 완연하게 깨닫게 됐다.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고독이란 "나만의 동굴"일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고독이란, 나만의 시간, 나를 찾아가는 시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나를 목격하는 시간, 나의 길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 혼자만의 시간, 통찰과 반성의 시간, 성장하는 시간...이다. 내공을 쌓는 일이자 날 더 순수하게 만드는 일이다.


고백하건대, 몇년 전 부터(아마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변하기 시작한 때)나는 의도적으로 고독을 선택한다. 고독을 찾고 고독을 만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고독이라는 내 안의 동굴로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신비로운 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기쁨이란 그 즐거움이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황홀감이다. 그러니 어찌 이 고독을 놓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나에게 고독은 나의 벗이고 애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걸 미처 다 깨닫기도 전인 내가 만약 그때 그 시절에 결혼했더라면 과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까.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을까. 나라는 개인의 삶 역시 잘 살아내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아찔할 때가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때,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내 안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 성숙한 인간이 되었을 때, 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을 때, 내 스스로를 포용하고 수용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았을 때... 결혼을 하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과 시선으로 결혼생활도 잘 유지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날 사랑한다는 것, 날 이해한다는 것, 날 수용한다는 것, 날 인정한다는 것, 날 용서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바꾸어 말하면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인정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므로 훨씬 더 깊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너그러운 아내, 너그러운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희한하리만치 훨씬 더 어렸을 때보다, 서른 중반인 지금의 내가 더 궁금하다. 나와 나를 둘러싼 우주와 세계와 세상에 온통 궁금한 거 투성이고 호기심에 가득차 있다. 그러니 삶이 지루할 틈이 있나. 평범한 일상에서도, 지리한 일상에서도, 나는 어떻게서든 나만의 방식과 해석으로 의미를 두고 가치를 둔다. 그러면 보잘 것 없어보이는 내 소소한 일상도 의미있고 가치있어 진다.


지금의 내게 고독은 가히 긍정적이며 사랑이다. 고독을 이렇게 느낄 수 있게 해 준 지난 나의 갖은 경험들에도 감사하게 됐다. 뭐든 내 마음에 달렸다는 말. 정말 맞다. 내 삶의 주인이 난데, 무언들 못할까. 살면서 느끼게 된 것 중 하나, 남의 말 듣지 않아도 잘만 산다.는 것.


"너만의 동굴을 가졌느냐?" 이 말이, 이 울림이 내 머릿속에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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