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간간히 살포시 한 두방울 정도 내린다. 실내에 들어와서는 잠시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봤다. 오후 4시가 지난 시각이지만 비오는 날의 여느 날처럼 짙게 내린 공기와 분위기에 내 마음도 덩달아 가라 앉는다.
3월은 드문드문 우울감도 잦게 일었고 신경쓸 일들이 자잘하게 생기는 걸 보니, 3월을 어여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4월을 괜시리 그리고 유난히 더 기다리게 된다. 어릴 적부터 비오는 날을 유난히도 좋아했는데 그 취향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제 문득 새로 바꾼 핸드폰 관련해 불편한 감정이 인 일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초아야, 잠시만. 캄다운하자. 마음 다스리자. 워워." 스스로를 잠시동안 다독였다. "이까짓 게 뭐라고 잠시라도 네 마음에 이런 감정이 일게 하는 거니?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내버려 두자구." 그러곤 양팔 벌려 내 양 어깨를 힘껏 감싸 안아줬다.
화가 일더라도 그 화가 도대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겐 아무 소용 없는, 아무 의미 없는 감정이라는 걸 너무 잘 알게 되었달까. 화낼 일도 심호흡 한 번하고 만다. 화를 다스릴 줄 알게 됐다.
요즘의 내가 지금의 내가 부쩍 자주 깨닫고 있는 것들을,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스무살, 서른 초반에서라도 알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그러기에 더더욱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이런 생각이 자주 들곤한다.
비가 한 두 방울 내리는 와중에 모자를 눌러쓰곤 그냥 무작정 한 시간을 걸었다. 산책은 언제나 날 무의식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떨 땐 나도 모르게 어느 새 목적지까지 다다를 때도 있다. 생각한다는 것, 그것도 제대로 생각하는 것. 사유하는 것. 사색하는 것. 나만의 생각을 갖는다는 건 내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비 내리는 날 딱 그런 날의 정취. 분위기가 있다. 짙게 깔린 어두컴컴한 무드. 회색 잿빛 같은 감성이 날 더 감성적이게 사색적이게 한달까. 걷고 또 걸으면 어느 새 사특한 생각일랑은 사라져버린다.
고백하건대, 내 마음이 어두울 때, 가라 앉았을 때, 마음이 복잡할 때, 사특한 생각이 일 때, 내 마음의 파도가 요동치는 순간에 글을 써 내려가면 놀라울 만큼 내 생각은 정리되고 명료해진다. 글을 통해 써내려간 나의 글들은 내게 즉각적인 처방전인 셈이다.
요거트 스무디가 급 당겨 가는 길에 요거트 스무디 한 잔을 샀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내가 나를 아껴줘야 해. 내가 나를 사랑해줘야지. 내가 날 안아줘야지. 내가 날 위로해줘야지. 내가 날 지켜줘야지... 내가 늘 하는 말이기도 한데. 나는 날 진심으로 보호해야 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비오는 날은 또 비가 오는대로 그 정취를 신선놀음하듯 즐겨주고 맑게 개인 날은 또 그런 날대로 그 정취를 즐기면 된다는 생각을 내 삶에도 내 일상에도 내 하루에도 어김없이 적용해본다.
삶은 원래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