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다정한 마음
내 아이는 냄새에 민감하다.
음식 냄새에만 민감한 게 아니라 사람냄새나 특정 장소에서 나는 냄새도 잘 기억한다. 볼수록 신기하다.
어느 날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 창문을 열었는데 밤새 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이라 비 냄새가 났다.
맑은 날이 아닌 비 온 날에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냄새.
이 냄새를 맡은 수지가 이렇게 말했다.
"어? 소 할아버지 집 냄새난다."
소 할아버지는 수지의 친할아버지인데, 시골에서 소를 키우셔서 '소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비 온 뒤 냄새가 시골에서 맡던 냄새 같았나 보다.
사실 나는 무슨 냄새인지, 뭐가 비슷한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태어나서 모든 걸 처음 맡아보고 느껴본 수지는 모든 감각에 다 열려있어서 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이는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한다.
가끔 이렇게 냄새로 장소를 기억하는 수지의 말을 들을 때 신기해서 항상 놀란다.
그리고 어느 날엔 아침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타자마자 수지가 "어? OO 이모 냄새다."라고 말했다.
수지가 말한 이모는 내 동생이다. 수지가 참 좋아하는 J 이모.
나도 내 동생의 냄새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수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이모 냄새라고 했다. 수지 말을 듣고 나도 냄새를 맡아보려 했지만 내가 둔한 건지 별 냄새가 나지 않았다.
"수지야 이모 냄새가 나? 엄마 냄새 아니야?"
"엄마 냄새 아니야. 엄마 냄새는 꽃냄새야"
똑 부러지게 말하는 수지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서는 꽃냄새가 난다니 기분이 좋았다.
수지는 어떤 장소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를 잘 기억한다. 어딘가에 갔는데 자신이 아는 익숙한 냄새가 나면 곧잘 어떤 장소를 기억하거나, 누구 냄새라며 그 사람을 기억하곤 한다.
수지가 대상의 외형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냄새로 장소나 사람을 기억하는 게 무척 특별해 보인다.
그리고 이 기억법은 왠지 조금 더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그냥 보이는 걸로 기억하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억해 주는 것 같아서. 자신의 오감을 총동원해서 상대를 기억하는 게 너무나 정성스러워서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수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모 냄새'라고 말한 것을 내 동생에게 얘기해 줬더니 동생은 놀라면서 좋아했다. 그럴 만도 하다. 누군가가 내 향기를 기억하고 떠올려준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히 내 냄새를 기억한 게 좋은것보다 나에게 이만큼의 큰 관심을 가져준게 더 고맙고 기분 좋은 것이다.
냄새로 장소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좀 더 섬세하고 다정하다.
나도 이제 어떤 장소에 가면, 그 장소의 풍경만 담지 말고 향기도 음미해 봐야겠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첫눈에 보이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봐야겠다.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보려고 하는 만큼 보이고, 들으려고 하는 만큼 들릴 것이고, 알고자 하는 만큼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보는 세상에 좀 더 마음을 열고 내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서 온전히 느끼게 된다면 내 삶이 좀 더 다채롭고 풍성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