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에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 주는 법

버스 타고 무작정 아무 데나 가보기

by 행복수집가

치과 진료가 있어서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11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 시간을 냈는데, 간단한 검진이어서 금방 끝났다.


검진이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점심으로 토스트를 먹고 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리다가 천천히 회사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막상 카페에 가니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떨어진 구석에 앉으려고 했지만, 카페가 그리 큰 카페가 아니어서 구석에 앉아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들렸다. 그래서 얼른 토스트와 티를 마시고 일어났다.


그렇게 카페를 나왔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서 문득 떠오른 즉흥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즉흥 여행은 목적지를 두지 않고 일단 버스에 몸을 싣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서 그곳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걸 정말 해보고 싶었다.


항상 어떤 목적지를 두고, 계획을 하고 약속을 잡아서 어딘가로 갔었는데, 나 혼자의 시간이 주어지면 그 순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보는 그런 일상 속 작은 여행이 항상 하고 싶었다. 늘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여행을 오늘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도 그리 덥지 않고 선선한 편이었다. 양산 쓰고 걸으니 딱 좋았다.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바로 오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의 노선은 미리 확인도 안 하고 일단 그냥 탔다.


예전엔 버스를 매일같이 잘 타고 다녔는데, 육아를 하면서는 버스 탈 일이 정말 없었다.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니 버스를 타는 것마저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살고 있는 내가 사는 이 도시. 워낙 오래 살아서 자주 가던 동네나 살았던 동네를 가면 무엇이 바꿨는지도 단번에 알아차린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이전과 달라진 것들도 보이고, 또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익숙한 것들도 보인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며 지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감정도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그 장소를 이전엔 지금보다 더 어린 내가 봤었고, 시간이 흐르고 더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그 장소를 보니, 그때와는 다른 감정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 마음을 가지니, 익숙한 도시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여행 온 것처럼.


그리고 내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진주 시내였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꽤 자주 갔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 연애할 때도 한 번씩 가던 진주 시내. 아주 오래된 추억이 많은 곳이다.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지만, 또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금요일 낮에 가니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대학생 무리들, 직장인들, 어린 학생 커플들 사이에 일본인 관광객도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이전에 자주 왔던 곳에 오랜만에 오니 괜히 마음이 더 편안하고, 반갑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천천히 걸으며 시내 구경을 하다가, 아트박스에 들어갔다. 난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요즘따라 계속 소품 숍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아트박스를 보니, 여기서 귀여운 아이템 좀 구경해야겠다 싶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온통 귀여운 것들로 가득 찬 매장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트박스에 들어가서 구경하기 전에 내 여동생에게 연락했다. 여동생은 시내의 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혹시나 동생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연락했더니 1시까지 점심시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전화했을 때가 12시 50분쯤이어서, 못 보겠다 싶었는데 내가 지금 아트박스라고 하니 내 동생이 바로 코앞이라며 날 보러 오겠다고 통화를 하는 중에 뛰어오고 있었다. 잠시라도 나 볼 거라고 점심시간을 10분 남겨두고 날 보러 왔다.


내 동생이 한 손에 먹다만 커피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왔다. 정말 반가웠다. 동생이 가까이 살아도 동생의 휴무일이 일정치 않고, 퇴근 시간이 늦어서(출근을 늦게 한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날,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되니 반가움이 더 컸다. 우리 둘은 서로 너무 반가워하며, 잠시 아트박스를 구경했고 짧은 시간에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치과 갔다가 2시 반까지 회사 들어가야 하는데 버스 타고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하니, 대단하다며 내 동생이 웃었다.


그래서 내가 “일상이 여행이야”라고 하며 또 웃었다.


들어가야 할 시간이 돼서 가야 하는 동생에게 얼굴 봐서 너무 좋았다고 인사하고 뛰어가는 동생이 안 보일 때까지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동생 얼굴을 보고 나니, 행복감이 풀충전 되었다. 한껏 좋아진 마음으로 귀여운 것들을 구경하고, 다이어리에 붙일 스티커를 샀다. 산리오 스티커 팩이었다. 사고 아주 만족했다. 귀여운 거 잘 샀다.


내 나이 만으로 3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귀여운 스티커가 너무 좋고 40, 50대가 되어도 귀여운 건 계속 좋아할 것 같다.


이렇게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은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카페라테 마시며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 마침 스벅 쿠폰 받은 게 있어서 그걸로 커피 한 잔을 샀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전자책을 읽었다. 행복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커피, 음악, 책.


이렇게 나의 즉흥 일상 여행을 마무리했다.


오늘 계획하지 않고 즉흥으로 간 일상 여행이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더 행복한 그런 느낌이었다.


계획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생각지 못한 일들이 나에게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늘 정해진 루틴대로, 같은 틀 안에서 보통의 일상을 지내는데, 물론 이 속에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가끔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버스에 몸을 실어 마음 가는 곳에 내리고, 발길 닿는 데로 가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경험을 통해 몸소 느꼈다. 조금 밋밋한 일상에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주는 이런 즉흥 여행을 가끔이라도 꼭 가야겠다. 행복감과 힐링되는 마음으로 충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