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빠가 손녀를 보기 위해 쓰는 방법

포도에 담아 온 사랑

by 행복수집가

지금은 나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아이 하원을 시키는데, 예전엔 친정엄마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와서 하원시켜주셨다.


그때는 친정 아빠가 퇴근길에 항상 우리 집에 들러서 수지도 보고, 엄마도 태워서 집에 가셨다.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항상 수지를 보셨는데, 지금은 나와 남편이 아이를 하원시키다 보니 아빠는 평일에 수지를 보는 게 어려워졌다.


그냥 보고 싶을 때 와서 언제든 보고 가셔도 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혹시 불편할까 봐 배려해주시느라 평일에 자주 오진 않으시는 것 같다.


친정집과는 차로 가야 가까운 거리인데, 나는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어서 평일에 아이를 데리고 친정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아빠는 수지가 너무 보고 싶을 땐 뭔가 구실을 만들어서 집에 잠시 들르신다. 이번에 수지를 보기 위한 구실은 포도였다.


늘 오실 때마다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손녀를 보러 오시는데 포도 맛있는 거 있다고 10송이 든 거 한 박스 준다길래, 우리 다 못 먹는다고 조금만 주라고 하니, 알겠다며 5송이만 가지고 온다고 하셨다.


아빠가 오신다고 한 날은 남편이 수지를 하원시키는 날이었다. 남편은 수지 하원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난 회사에 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해서 수지 만났냐고 물어봤더니 아빠는 가지고 온 포도는 우리 집 문고리에 걸어 놓았고, 수지가 놀고 있다는 놀이터를 찾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저기 가봐도 아이가 없다고 하셨다.


아파트 단지 안에 놀이터가 여러 개라 헤매고 계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지가 늘 가는 놀이터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며, 거기 가면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알겠다며 가 본다고 하셨다. 그렇게 일단 통화를 끊고,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퇴근 시간쯤에 다시 연락을 했다.


아빠는 수지를 만났고 지금은 집에 도착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지를 만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시는데, 기쁨으로 가득 찬 약간 상기된 목소리였다.


수지랑 놀이터에서도 놀고, 킥보드도 탔는데, 할아버지한테 잘 타는 거 보여주고 싶었는데 타다가 넘어져서 수지가 부끄러워하며 하며 박서방 품에 안겨 있었다고 했다. 이 얘기를 해주는 내내 아빠가 웃으며 얘기하고 있구나 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회사 동료에게서 선물 받은 고급 막걸리가 있었는데, 우리는 잘 먹지 않아서, 아빠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냉장고에 놔두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아빠가 오셔서 막걸리도 드렸다. 막걸리가 제 주인을 만났다. 아빠는 박서방이 막걸리도 줬다며 즐거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셨다.


그리고 수지와 같이 마트에도 다녀왔다고 하셨다. 마트 가서 수지 사고 싶다고 하는 거 다 사주셨다고 하셨다.


수지가 말도 너무 잘하고 너무 이쁘고, 수지가 이랬고 저랬다며 말씀을 하시는데 아빠 목소리에서 수지를 만난 기쁨이 다 가시지 않은 그 행복함이 느껴졌다.


정말 포도를 갖다 주겠다는 것은 그저 손녀를 만나기 위한 구실이었다.


포도는 제 역할을 잘했고, 이 날 저녁에 아빠가 주신 포도를 맛있게 먹었다. 사실 포도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내 돈 주고 사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렇게 누가 먹으라고 주면 먹는 게 포도다.


주신 포도의 포도알이 너무 작아서 이게 먹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느낌이었지만 아빠 말대로 달콤하긴 했다. 아주 작은 포도알이 달콤함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수지는 포도는 씨가 있어서인지, 안 먹겠다고 하고 나와 남편에게 포도 한 알 한 알 떼어주며 먹으라고 나눠 주는 걸 재밌어했다. 아빠가 주신 포도를 먹으며 우리 식구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아빠가 수지와 마트에 가서 사주신 것 중에는 마트 갈 때마다 수지가 갖고 싶어서 매번 만지작거렸던 손모양의 비눗방울과, 인형놀이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 그 외에도 수지 과자, 요플레, 주스로 온통 수지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가득 봉투에 들어있었다.


내가 이걸 보고 “수지가 할아버지랑 마트 가서 이때다 싶어서 그동안 사고 싶었던 거 다 샀나 보다”라고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남편도 공감했다.


아빠가 주신 포도와, 마트에서 한가득 사주신 물건들 안에 그저 뭐든지 다 주고 싶은 손녀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모든 것은 그저 수단이고 구실이다. 포도 주러 오면서 손녀를 보고, 마트 가서 손녀가 갖고 싶다는 거 다 사주면서 기뻐하는 아이를 보는 게 할아버지의 큰 기쁨이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한 좋은 이유들이다.


내가 퇴근하고 왔을 땐 아빠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지만, 아이와 함께 웃으며 즐거워했을 아빠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행복해했을 아빠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행복했다.


수지는 날 보자마자 오늘 할아버지와 놀았다고 이야기했다. 신나서 말하는 아이를 보니, 오늘 할아버지가 와서 수지도 행복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할아버지가 행복을 가득 뿌리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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