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4' 를 온 마음으로 즐긴 사람의 후기
이번에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4' (이하 '태계일주')를 무척 재밌게 봤다. 이전 시즌은 클립 영상으로 올라오는 하이라이트만 봤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풀영상으로 다 봤다.
특히 이번 시즌4에 관심이 생긴 건, 여행의 시작이 '네팔'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20대에 네팔에서 4년을 살았다. 그래서 네팔은 나에게 특별하다.
태계일주에서 네팔 공항 풍경, 네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네팔에 안 간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네팔어도 안 쓴 지 오래됐는데, 영상에서 들려오는 네팔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런 나 자신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한번 익힌 언어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고, 오랜만에 듣는 네팔어가 반가우면서도 내가 아직 네팔어를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괜히 뿌듯했다.
태계일주 1화에서 기안 84는 네팔의 셰르파 소년들과 함께 짐을 지고 산을 올랐다.
기안84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도 네팔에 살 때 커다란 냉장고를 지고 산을 올라가는 현지인을 본 적이 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다. 저런 경험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특별하고 대단한 것 같다.
셰르파와 같이 짐을 머리에 지고 간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인 것 같은데, 기안84는 자기도 해보겠다고 대뜸 말한다. 그는 방송을 위해서나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 순간 진심으로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하나하나 직접 경험해 보려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억지스럽지 않았고, 원래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것에 겁 없이 뛰어드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오히려 힘든 일일수록 더 해보고 싶어 하는 그를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기안84가 현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직접 체험 한 건 아니지만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간접 체험만으로도 내 안에 굳어 있던 사고의 틀이 조금씩 깨지는 것 같았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생각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며 마음도 한결 더 자유롭고 여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도 기안84와 같이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마음을 열게 되고, 현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네팔을 지나, 중국 소수민족인 나시족 마을에 간 것도 무척 재밌게 봤다. 일단 그 마을 풍경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신비롭고 독특했다.
출연진들은 나시족 마을 현지인 집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 그들이 하는 농사일을 돕기도 했다. 나시족 사람들은 주로 농업을 하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그곳 사람들은 묵묵히 일터로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매일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 얼굴엔 불평이나 불만이 안보였다. 그저 평안했다. 이 삶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여유가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졌다.
이 깊은 산골에서 하루 종일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한다는 20대의 젊은 자매 두 명은 얼굴에 그늘이 하나 없었다. 처음 보는 이방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만난 첫날 자기 집에 초대도 해주고, 밝고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 것에 대해 힘들다는 투정 하나 없이 오히려 편안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자기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바라거나 욕심내지 않고, 묵묵히 하루하루 자신의 할 일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삶의 기본에 충실한 그들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졌고 '현재를 온전히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고 마음 깊이 느꼈다.
그들의 삶을 내가 다 알 수는 없고, 방송을 통해 아주 작은 일부만 봤을 뿐이지만, 그 작은 조각만으로도 내게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태계일주에 나온 4명의 출연자(기안84, 이시언, 빠니보틀, 덱스)들을 보며 어느 나라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자기 기준에 그들을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웠다.
이들은 단지 이론으로만 아는 데 그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직접 부딪히고 겪으며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을 몸소 체험했고, 더 깊이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꾸밈없이 솔직하게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잔잔한 감동이 전해졌다.
태계일주는 그냥 편하고 좋은 곳이 아닌 일부러 오지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 여행하기 쉽지 않은 곳들만 골라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전혀 다른 문화와 세상을 만나게 되었고, 출연자들 역시 매 순간 자신의 관념을 깨고 도전하며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그런 변화를 시청자로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태계일주4에서 방문한 네팔, 중국 소수민족 지역, 티베트는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뒤처져 있지만, 그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방인을 맞이해 주었다. 그 환대와 따뜻함은 화면 밖으로도 전해져 왔다.
출연자들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푸근한 정으로 위로도 받고 힘을 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마음이 흐뭇하고 편안해졌다.
그 사람들은 마음이 부자였다. 자기가 가진 것을 넉넉하게 나누어 줄줄 알고, 이방인을 거리낌 없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출연자들이 여행하는 동안 나도 함께 마음으로 여행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과 생각의 틀 안에 갇혀 있었는지도 깨달았고, 이 깨달음을 통해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마음을 더 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태계일주4에 나온 어린 10대 셰르파, 오직 용병이 되기 위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집을 떠나 훈련소에서 오로지 훈련에만 집중하는 젊은이들, 깊고 깊은 산골에서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나시족의 20대 자매들, 차마고도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평생 수행만 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의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나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하나였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 것.'
책에서 배운 이론이 아닌, 그들의 삶에서 이 메시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여행 예능에서는, 그들이 간 나라의 사람들보다 출연자들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출연자들이 뭘 먹고 뭘 했고, 어딜 갔는지 그런 것들에 더 포커스가 맞춰지는데 태계일주는 출연자들이 만난 현지인들과 그들의 삶, 문화에 더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게 된 것 같다. 그 점이 다른 여행 프로와 확연히 다른 태계일주만의 큰 매력인 것 같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잘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기안84, 이시언, 빠니보틀, 덱스 각자의 매력이 뚜렷한 4명의 출연자들은 서로 정말 친해야만 나올 수 있는 편안하고 즐거운 에너지를 마음껏 보여주었다. 그 점이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편안한 즐거움을 느끼게 한 것 같다.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자체가 전부인 것 같은 좋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좋은 기운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마음으로 여행을 하니, 매 회마다 재밌었고 감동도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태계일주라고 하니 참 아쉽다.
보는 동안 정말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냥 재미있고 가벼운 여행 예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아주 의미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태계일주를 보며 느끼고 배운 마음을 잊지 않고, 항상 되새기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