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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좋아진 이유

by 행복수집가

난 햇빛 알레르기가 있고, 더위에 매우 약해서 오랫동안 여름을 싫어했다. 땀도 잘 나는 체질이라 조금만 더워도 이마 아래로 땀이 줄줄 흘러내려서, 마치 폭염 속에서 100미터 달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앞머리가 있는 나는 땀이 나고 습한 더위에 앞머리가 젖는 것도 싫었고, 고데기로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가 부스스해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늘 더운 것보다 추운 게 낫다 생각하고 살았다.


그렜던 내가 언젠가부터 여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내가 여름에 마음을 많이 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름을 싫어했던 이유였던 햇빛 알레르기도, 아이를 낳고 나서는 하지 않고 있다. 출산이 체질에 변화를 준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예전처럼 알레르기를 반응이 나타나진 않는다.


물론 매일 선크림도 잘 바르고 항상 양산을 쓰고 다니면서, 뜨거운 자외선을 차단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엔 이렇게 해도 바닷가에 가거나 무척 뜨거운 햇볕을 잠시라도 받으면 빨갛게 두드러기가 올라왔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내 몸이 괜찮아져서인지, 이제는 여름 풍경을 만끽하는 여유도 생겼다.


매일 점심마다 산책하며 보는 풍경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데, 이번 여름엔 '여름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것을 새삼 많이 느꼈다.


강한 햇빛을 머금은 나무와 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짙고 싱그러운 초록빛을 뽐낸다. 초록으로 가득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비록 이번 여름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더워서 힘든 것보다 청량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행복이 더 크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뜨겁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오히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




그리고 여름 바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맑고 투명한 빛으로 찰랑이는 바닷물에 뛰어들어,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은 여름을 더 빛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 여름, 부산 해운대 가서 찍은 사진(내 아이의 뒷모습과 바다)


이런 풍경을 보면 저절로 '청춘'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왜 여름에 청춘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나오는지, 그리고 청춘 드라마에는 왜 꼭 여름 바다가 나오는지 알 것 같다. 활기차고, 열정적인 여름 바다의 풍경은 뜨겁게 타오르는 청춘과 참 많이 닮았다.


그리고 7월 중순부터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진짜 여름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귀를 찌르도록 크게 우는데도 시끄럽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참 신기하다. 매미소리 없는 여름은 상상만 해도 허전하다. 매미 소리는 여름에 빠질 수 없는 배경음악이다.


이렇게 여름의 매력을 깊이 느끼다 보니, '덥긴 해도 여름은 좋아'라는 마음으로 이 계절을 즐기고 있다. 청량한 이 계절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내 인생에서 올해 여름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여름이 어느새 좋아진 건, 아마도 이 계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이 나중에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그래도 이런 변화가 나이 들어서 오는 거라면, 나이 드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지나가는 지금이 너무 소중해서 아쉽고, 그 소중함을 알기에 온 마음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정성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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