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 어크로스)
어느 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엇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 할 일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나를 보며 문득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나? 나는 왜 모든 시간을 뭔가를 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은 그냥 낭비하는 시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서점에 들렀다가 마침 이 책을 발견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이 책은 내가 품고 있던 생각과 고민에 명쾌한 답을 주었다.
저자는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자 20년 경력의 신경과학자다. 그는 과로로 인해 안면마비 진단을 받고 강제적인 침묵의 시간을 맞이한다.
늘 바쁘게만 살았던 그는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게 되자 처음엔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자신을 살리고 병에서 회복하게 했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 어째서 아무것도 안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잠자코 가만있으려니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왜 이리 심해질까? 이 불만족스러운 감정은 기본적으로 성과에 토대를 두는 이 시대의 징후라 할 수 있다.
-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사실, 그가 방 안에서 가만히 쉴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활동에 중독되어 있다. 성과와 성취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언제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자기도 모르게 받는다. 그래서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고 도태될까 두렵다. 게으르고 나태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 같아 불안해진다.
나 또한 무의식 중에 이런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다. 빈틈없이 시간을 채워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죄책감 없이 받아들여도 된다는 것을.
- 왜 이 순간을 자꾸 뭔가로 더 채우려고만 하고 그냥 살지는 못할까? 다시 말해 그저 호흡만 하지는 못하는 걸까?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산책을 해보자.
- 나의 정신이 내게 허락도 받지 않고 배회한 것은 사실 좋은 일이었다. 집중을 포기하고 생각이 표류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실은 대단히 생산적인 활동일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산책을 할 때 늘 귀에 꽂았던 무선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이 내 기분을 더 좋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음악 없이 그냥 길을 걸어보니 자연의 소리가 내 귀를 가득 채웠다. 자연에서 이렇게 많은 소리가 나는 줄 몰랐다.
자연은 수많은 소리들로 가득했다. 새들의 지저귐,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나뭇잎이 슥슥 부딪히며 만드는 소리들. 자연은 이미 완벽한 오케스트라였다. 그 소리들은 음악이 주지 못한 또 다른 평안함을 선물했다. 음악 속에서 느끼던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안함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산책만 하다 보니, 지금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 그리고 '이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산책하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여러 생각들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이 흘러가는 모습도 그저 조용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했지만, 그것들이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리되는 듯한 평온함이 밀려왔다.
이 경험 이후, 나는 산책할 때는 오직 산책만 한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침묵 속의 산책은 이제 나에게 온전한 명상의 시간이 되었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백의 시간을 더 소중히 챙긴다. 해야 하는 일을 마친 뒤 시간이 남으면,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비어있는 그대로 둔다. 그렇게 하루의 여백이 생기자 비워진 오히려 마음이 더 충만해짐을 느낀다.
침묵은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었고, 내 안에 잠재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피어나는 시간이었으며, 흩어진 생각들이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 이제 나는 침묵이 찾아드는 시간을 기회라 느끼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침묵은 행복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깊은 행복. 침묵을 통해 소리 없이 자신과 자신의 감각에, 나아가 타자와 환경에 맞닿는 법을 배운다.
-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우리가 완전히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튀어나온다. 사실, 이 아이디어들은 진즉에 소리 없이 뇌에서 무르익다가 개념화가 진정된 상태에서 의식 위로 떠오른다.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수많은 잡음이 나를 둘러싸고 있기에 진정한 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고요를 통해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를 얻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 침묵은 내 마음을 평안과 고요함으로 이끌어주었다.
이제는 하루의 여백을 불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누린다.
내 안의 빈 시간이, 곧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