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털어놓은 아이의 힘든 이야기

아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일

by 행복수집가

요즘 내 아이는 내년 1월에 있을 유치원 발표회를 준비하느라 매일 유치원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혹시나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하루에 조금씩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연습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수지는 무대에 서는 것이 기대된다며 오히려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집에 와서도 유치원에서 연습한 동작을 따라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즐기며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밥을 먹던 수지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워' 할 때 칙칙폭폭 하는 거 너무 어려워. 안 하고 싶어. 선생님한테 말해줘."


자기가 힘든 걸 선생님께 말해달라는 수지의 얼굴은 생각보다 많이 진지했다.


나는 수지를 안아주며 말했다.
"칙칙폭폭 하는 게 많이 힘들었구나. 수지 연습한다고 고생이 많구나."


그저 즐겁게 연습하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힘든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지가 말하는 '칙칙폭폭'이 정확히 어떤 동작인지는 몰랐지만, 꽤 버거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수지가 한 말을 그대로 선생님께 메시지로 전해드렸다. 잠시 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그 '칙칙폭폭' 동작에 얽힌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원래 아이들이 잘 따라 하던 동작이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동작과 대형을 하나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익숙해진 동작이 바뀌면서 아이들 모두 멘붕이 왔을 거라고 하셨다. 그동안 잘해오던 아이들이라 갑자기 낯선 동작과 대형을 따라가느라 더 힘들었을 거라고.
수지도 아마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도 아이들을 계속 칭찬하고 격려하며 연습하고 있고, 앞으로 더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선생님께 고생 많으시다고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하는 동안 수지는 내 옆에 바짝 붙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선생님께 수지가 했던 이야기를 전했고, 선생님이 더 잘 챙겨주신다고 하셨다고 말해주었다. 동작이 바뀌어 힘들지만, 연습하다 보면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고도 격려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수지는 또 하나의 마음을 꺼내놓았다.


"엄마, 연습할 때 내가 내 자리를 잘 몰라서 거기 서 있었는데, 친구 00가 ‘너 자리 거기 아니잖아. 너 때문에 다리 아파.'라고 말했어. 난 잘 몰라서 거기 있었는데.."


울먹이며 말하는 수지의 얼굴은 곧 울음이 터질 것처럼 보였다. 바뀐 대형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자리를 헷갈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친구의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수지는 이어서 말했다.


"나 그 말 듣고 눈물 날 것 같았어. 그런데 안 울고 참았어."


"눈물이 나는데 왜 참았어?" 하고 내가 물었다.


"친구들 앞에서 우는 거 안 보여주고 싶어서."


수지는 나름의 자존심으로 눈물을 꾹 참은 채 연습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 어린아이가 서러움을 참고,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따라 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날, 내 마음에는 불만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올라왔다.
'왜 유치원에서는 매번 이런 발표회를 할까. 그냥 잘 놀고, 평소에 하는 수업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아이들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불평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유치원이 아니라 내 마음이구나.'


그 생각이 들자,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만은 내려놓기로 했다. 이왕 하게 된 공연이라면, 수지가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수지는 서러움도, 어려움도 겪겠지만 그 경험들이 오히려 수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수지를 충분히 위로하고 말했다. 정말 힘들었겠다고, 그래도 계속 연습하다 보면 '칙칙폭폭'도 분명 잘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날 있었던 친구의 말에 대해서도 선생님께 다시 한번 말씀드리며 대형 연습을 할 때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선생님은 아주 긴 답장을 보내주셨다. 수지가 얼마나 속상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앞으로 더 신경 써서 잘 챙기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든지 이런 이야기는 편하게 해 달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았다면 선생님도 몰랐을 것이고, 수지는 혼자 참고 버티다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는 수지를 보며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엄마'라는 사실이.


앞으로 수지가 더 자라면 감당해야 할 일들도, 마음의 짐도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수지의 작은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네 이야기를 늘 진지하게 듣고 있어."


이 믿음이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다행히 그날 이후 수지는 다시 즐겁게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앞으로도 분명 힘든 일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지나오느냐인 것 같다.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지켜보며, 나 역시 엄마로서 한 단계씩 성장해 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이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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