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
올해 설에는 남편이 야간 근무라 시댁에 미리 다녀왔다.
수지는 이번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이번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절할 거야.”
올해 일곱 살이 된 수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새해 인사를 못 하겠다며 내 뒤로 숨던 아이였다. 어른들이 한 번만 해보라며 다정하게 타이르고 부탁해도, 부끄러워 고개를 저으며 내 뒤에 숨어버리곤 했다.
그랬던 아이가 이번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엄마, 나 이번에는 용기 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해볼게.”
눈을 반짝이며 결심을 말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우와, 수지가 이번엔 용기 내서 인사할 거야? 그래, 좋아! 이번엔 해보자.”
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수지가 덧붙였다.
“나 절하고 돈 받으면 장난감 사러 갈 거야.”
결국 목표는 ‘용돈’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해 인사를 하고 용돈을 받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 아는 일곱 살이 되었다. 돈으로 장난감을 살 수 있다는 것, 세배를 하면 용돈을 받는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 계획마저 귀여웠다.
드디어 할아버지 댁에서 세배를 하게 된 수지는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쑥스러운지 혀를 쏙 내밀더니, 큰 소리는 못 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는 두 손을 곱게 모아 예쁘게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온 식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아버님은 흐뭇한 얼굴로 수지에게 용돈을 건네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못 해”라며 내 뒤로 숨던 아이가 1년 만에 이렇게 컸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저마다의 속도와 때가 있다는 것.
아이는 아무리 시키고 가르쳐도 하지 않던 것들을,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준비되면 어느 날 스스로 해낸다. 아이의 성장이라는 게 대부분 그런 것 같다.
꼭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아이마다 기질도, 속도도 다르다. 다른 아이는 하는데 내 아이는 아직 못한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수지는 기저귀도 늦게 뗐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기다림’에 대해 조금 배웠다. 아이는 결국 자기 속도로 자란다는 것, 부모의 조바심이 아이의 시간을 앞당겨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번 세배도 그랬다.
시키지 않아도,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했다면 아이에게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그 순간이 이렇게 따뜻하게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할아버지께 세배를 하고 두둑한 용돈을 받아 들고 활짝 웃는 수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세배 한 번에 이렇게 큰 성장을 느끼다니.
이번 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이가 한 뼘 자란 순간을 또 하나, 조용히 마음에 담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