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대신 책을 펼친 아이
내 아이는 밥을 먹을 때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먹는 습관이 있었다. 식사 시간에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영상을 보는 이 습관이 늘 마음에 걸렸다.
처음부터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습관을 시작하게 한 건 결국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습관은 굳어졌고, 갑자기 단번에 끊기도 어려웠다.
어른도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 어려운데 아이에게는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그래도 수지가 영상을 본다고 밥을 안 먹는 것은 아니었다. 밥은 잘 먹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 밥을 먹을 때 영상 보는 건 허락하지만, 밥을 7번 먹고 나서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었다. 밥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밥(반찬과 국 포함)을 7번을 먹어야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수지는 밥을 먹으며 횟수를 세었다.
“엄마, 6번 먹었어. 7번 먹었어.”
어쨌든 그렇게라도 하면서 밥 먹을 때 영상 보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갔다.
하지만 이 습관은 언젠가 고쳐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수지가 여섯 살이던 작년 중반부터 나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수지야, 7살이 되면 밥 먹으면서 영상 안 보는 거야.”
매일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남도록 가끔씩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7살 되면 영상 안 보고 밥 먹는 거야.”
그건 어느새 우리의 약속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수지는 싫다고 하지 않고 “알겠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올해 수지는 드디어 일곱 살이 되었다. 1월 1일부터 바로 약속을 지킨 것은 아니지만 수지가 유치윈에서 7세 반으로 올라간 3월부터는 정말 밥을 먹을 때 유튜브 영상을 보지 않고 식사를 하고 있다.
영상을 보지 않고 밥을 먹던 첫날, 수지는 영상 대신 책을 들고 와서 식탁 앞에 놓았다. 그리고 책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사실 밥을 먹을 때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식사에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어제까지 보던 영상을 오늘 갑자기 보지 않는 것도 아이에게는 힘든 일일 것이다.
수지는 ‘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을 책으로 달래고 있었다.
책을 보면서 밥을 먹는 수지를 보니, 영상을 보는 것보다는 책을 보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영상을 볼 때는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들을 아이가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하지만 책을 보니 달랐다. 수지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느낀 점이나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책은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한다. 수지는 책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하면서 밥을 먹었다.
영상을 볼 때는 화면에 홀린 듯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는데 책을 보니 아이 안에 있던 여러 감각들이 하나씩 깨어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식사 시간에 아이와 나누는 대화도 자연스럽게 훨씬 많아졌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조용히 밥 먹는 것이 아직은 어색한 아이에게 ‘책’은 심심함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좋은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또 하나, 참 기특한 점이 있다. 7세 반이 된 이후로는 밥을 먹을 때 “영상 틀어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속을 했다고는 해도 아이가 정말 지킬 수 있을까, 혹시 영상을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수지는 그 약속을 정말 지켜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모습이 참 고맙고 기특하다. 이 모습을 보며 아이가 한층 더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식사 시간에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영상 없이 밥을 먹는 일은 아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협력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밥 먹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영상을 보지 않아도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그 경험 속에는 내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작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에게 나도 함께 노력하며 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