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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Nov 15. 2024

아이가 유치원 연장보육 하던 첫 날

이것 또한 추억이다  

그동안엔 회사의 모성보호제도인 육아시간(2시간 단축근무)을 사용해서 아이를 늦지 않게 하원시켰다.

그런데 이 제도도 자녀 1명당 24개월 사용으로 제한이 있고, 나는 저번주까지 육아시간을 다 사용했다.

(앞으로 36개월로 연장이 된다고는 하는데 데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그래서 이제 내 아이는 유치원 연장보육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한 번도 늦게 하원한 적이 없는데, 언젠가 올 그날이 지금 와버렸다.


연장보육을 하던 첫날, 아이가 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평소보다 한두 시간 더 늦게 하원하는 건데,  그 한두 시간이 아이에겐 길고도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당분간은 내가 5시 반에 조퇴를 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하원시키기로 마음먹었다.


5시 반에 칼같이 조퇴하고 유치원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회사에서 유치원까지 걸어서 약 13분 정도 걸리는데 쉬지 않고 열심히 뛰다가 걷다가 했다.


걸어가면서 내내 아이 생각만 했다. 내가 데리러 가면 '수지가 어떤 표정으로 나올까, 오늘 어땠을까' 이것저것 궁금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는 사이 유치원에 도착했다.


정규수업이 끝난 후의 유치원은 조용했고, 신발장에 신발도 몇 개 없었다. 그리고 수지를 불렀고, 수지가 교실에서 조용히 나왔다. 수지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였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을 보고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루종일 유치원에 있으며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너무 고마워서 수지를 번쩍 들어서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유치원 벤치에 잠시 앉았다.


나는 수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수지야 오늘 힘들었지? 엄마, 수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수지는 힘들었냐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수지에게 너무 고생했다고, 등을 쓰담쓰담 만져주었다. 그렇게 수지는 내 품에 오래 안겨 있었다.


내 품이 편했는지, 수지는 한동안 가만히 안겨있다가 나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유치원가방에서 오늘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유치원 버스로 하원할 때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제일 먼저 보여줬는데, 이 날도 여느 때처럼 그랬다. 평소 하원할 때와 같은 모습을 보자 나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알록달록 이쁘게 색칠한 그림 뒷면에 수지가 글자를 끄적끄적 적어놓았는데, 엄마에게 쓴 거라고 했다. 내가 뭐라고 쓴 거냐고 물어보니 “엄마에게. 엄마 좋아. 엄마 사랑해. 엄마 이뻐. 엄마 착해.”라고 쓴 거라고 했다.


수지의 이 말에 울컥했다. 온통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글이었다. 유치원에 있는 동안 이렇게 엄마를 간절히 생각한 걸까 싶어서 고맙고 뭉클했다.




그리고 우리는 집까지 같이 걸어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하늘에 뜬 달을 보며 걸었다.


“엄마 저기 달봐. 달이 반짝 빛나.”


달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내 아이가 달을 보라고 하는 그 입이 너무 이쁘고, 달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달빛이 비추는 길을 아이와 발맞춰 걸었다. 참 행복했다.


이 순간, 아이가 오늘 힘들까 봐 신경 쓰이고 걱정됐던 모든 생각이 다 사라졌다. 내 눈앞에 있는 아이는 그저 해맑게 웃고 있는 맑고 순수한 아이였다. 내 옆에 있을 때 늘 편안해하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같이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저 좋았다.


걷다가 수지가 힘들다고 해서 등에 업었다. 그리고 수지에게 물어보았다.


“수지야, 유치원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게 좋아?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게 좋아?”


“음 엄마가 데리러 오는 거.”


“정말?! 엄마도 수지 데리러 가는 게 좋아.”


늘 일찍 집에 가다가,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 있는 걸 아이가 힘들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수지는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 것 같았다. 늦더라도 엄마가 오니까. 그러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달빛에 걷는 그 길을 즐겼다.


이전에는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에 집에 들어간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들어가며 보는 풍경은 또 새롭고,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나도 이제 걱정 말고 그냥 이 상황을 즐기려고 한다. 이것 또한 추억이다. 아이와 나의 소중한 추억.


힘들 줄 알았던 하원이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 될 것 같다. 평소보다 두 시간 더 늦게 보니, 그만큼 더 애틋하고 반갑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좀 더 짧아졌지만, 그래서 같이 있는 시간을 더 밀도 높게, 사랑으로만 꽉 채워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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