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세 식구 함께 쉬는 이번주말에 합천대장경테마파크로 가기로 정했다.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남편이 괜찮다고 가자고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 차 안에서, 계속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하며 즐겁게 갔다. 우리 얘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한 주제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난 남편과 얘기하는 게 정말 재밌다. 우리 둘은 성향이 분명 다른데도, 대화를 하면 코드가 맞고, 서로 다른 생각을 얘기해도 오히려 그 다른 점이 흥밋거리가 되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또 듣는다. 그리고 다른 것뿐만이 아닌 서로 공감하는 것들도 많다.
평소 스케줄 근무로 근무일과 휴무일이 들쑥날쑥 한 남편이라, 같이 쉬는 주말이 아니면 평소엔 길게 대화할 시간이 잘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붙어 있는 주말에 평소보다 더 대화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한 시간 반동안 차 안에서 남편과 즐거운 대화를 하며 가다 보니, 이동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즐거운 얘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게 되면 차라는 한 공간 안에서 남편은 운전만 해야 하고 나는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환경이라 차 안에서 더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것 같아 참 좋다.
남편과 연애할 때는 뜨거운 사랑이었다면, 결혼하고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나의 배우자로서는 따뜻한 온기와, 잔잔한 우정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지내면 오래오래 재밌고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처럼만 잘 지내자, 우리 부부.
그리고 내가 남편과 한참 대화하는 동안 차 안에서 우리 수지는 졸린 것 같은데 잠들진 않고, 살짝 멍 때리며 갔다. 평소에 차 안에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수지가 “엄마 너무 시끄러워”라고 얘기해서, (이런 얘기도 잘한다) 내가 “왜 그래 수지야 엄마 아빠랑 얘기하고 싶은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시끄러운 엄마를 보고 수지는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
몇 번 말해도 소용이 없으니, 아이도 포기(?) 한 건가. 나중에 차를 탄지 1시간쯤 지나니, 수지는 지루함과 힘듦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짜증이 슬슬 올라오는 아이는 카시트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내 무릎에 앉고 싶다 하여 도착지가 얼마 안 남았을 때 내 무릎에 앉혀서 갔다. 수지는 지루한 차 안에서의 상황을 이겨보려고 애쓰는 듯 “아아아아아~” 하며 노래인지, 절규인지 애매한 소리를 질렀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무사히 잘 도착했다.
도착해서, 입구를 들어가는데 대장경테마파크의 웅장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테마파크의 소재지명도 가야여서, 꼭 옛날 가야국으로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다른 시공간으로 온 것만 같았다. 정말 넓고, 다채로운 전시와 체험도 많이 해볼 수 있게 잘 조성된 곳이었다.
대장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는 우리 4살 수지도 그곳에서 신나게 놀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수지는 자기에게 맞는 테마나 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좋아하고 마음껏 즐거워하며 뛰어다녔다. 신나서 소리 지르며 뛰고 웃는 수지를 보니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 하는 생각과 행복함이 가득 밀려왔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록으로 다 남기고 지금까지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고, 그 기록으로 인해 우리가 살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격스러웠다.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대장경에 담겨있는 숭고한 정신과 기록유산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나의 하루도 기록하다 보면 그 기록이 내 평생의 역사서가 되는 것이다. 대단한 역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삶은 나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매일 글을 쓰며 기록 남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기록의 중요성과 대단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여기는 한 번만 와보기엔 너무 아깝다. 아이들 놀거리도 많아서, 해마다 아이 데리고 와도 좋을 것 같다. 수지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성장하는 아이와 오면 올 때마다 새로운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 다 돌아보지는 못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여유롭게 하나하나 음미하면 좋을 것 같다.
구경을 다 하고 점심은 근처 나드리김밥에서 오랜만에 분식을 먹었다. 돈가스 있는 집을 찾다가 가게 됐는데, 오랜만에 분식집을 간 거라 추억 돋고 괜히 더 좋았다. 그리고 테마파크가 있는 곳이 시골 작은 동네라, 꼭 90년대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고, 그 분위기가 좋았다.
배가 고팠던 우리 세 식구는 점심도 맛있게 잘 먹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수지는 금세 잠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창밖으로 계속해서 보이는 초록초록한 산풍경을 보며 힐링하는 기분으로 왔다. 푸른 산과 숲이 나의 시야를 가득 채울 때마다 내 마음도 초록색으로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초록색이 주는 힐링과 충전, 평안이 있다.
남편도 운전을 하다가 창밖 풍경에 감탄하며 나이가 들수록 바다보다 산이 좋다고 말했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자연풍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산이 좋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그렇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부부는 조용히 창밖 풍경만 바라보았다.
우리 부부가 살면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 둘 많아지는 걸 느낀다.
서로 좋아하는 게 같아지는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발견하는 게 편안한 행복감을 준다.
이 날 우리가 함께하고 같이 보고 느낀 행복함이 내 인생 페이지에 소중하게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