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한 친정 엄마의 마음
“엄마는 아기 때 뭐 하고 놀았어?”
수지가 나에게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엄마에게도 아기 때가 있었다는 걸 인지한다는 게 신기해서 놀랐는데, 일단 대답을 했다.
“엄마도 지금 수지처럼 놀았지. 인형도 가지고 놀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수지는 싱긋 웃더니 “엄마 아기 때 보여줘”라고 말했다.
이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보통 이맘때 아이들은 엄마는 처음부터 지금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던데, 수지는 엄마에게도 어릴 적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놀란 마음을 조금 진정하고, 나는 오랜만에 내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앨범을 꺼냈다. 수지에게 나의 어릴 때 모습은 처음 보여주는 거라 괜히 설레고 떨렸다.
지금 내 딸에게, 지금 내 딸의 나이였을 내 모습을 보여주다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앨범을 펼치는 순간 순식간에 그 시절로 돌아갔다. 사진관에서 찍은 나의 백일사진과 돌사진을 지나 내가 목도 잘 가누지 못하던 100일도 안 된 갓난아기 시절의 나부터 지금 수지 나이까지 시기별로 사진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결혼하면서 엄마가 내 어릴 적 사진을 깨끗한 앨범에 새로 정리해 주셨는데, 나는 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앨범을 잘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오랜만에 앨범을 꺼내서 보니, 분명 예전에도 여러 번 봤던 사진인데 예전엔 느끼지 못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나를 바라본 엄마의 표정이 보이고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쉬운데 내가 어렸던 시절만 해도 수동카메라로 찍고 필름을 인화해야 하는 때였다.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것에는 정성과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디 특별한 곳에 놀러 갔을 때만 찍을 만 하기도 한데, 내 어릴 적 사진은 집에서 그냥 놀고 있는 나, 먹고 있는 나 같은 일상의 내가 많았다. 지금 내가 수지를 보며 수지가 먹는 것만 봐도 귀엽고 그냥 놀고 있는 것만 봐도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막 찍어대는 것처럼 나의 엄마도 어린 내가 꼬물거리며 노는 거, 아장아장 걷는 거, 음료수 병에 빨대 꽂아서 먹고 있는 모습 등을 사진에 담아놓으셨다.
이 사진을 보니 '엄마가 나를 무척 귀여워하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진을 볼수록 그 시절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수지는 내 어릴 적 사진을 신기하게 보고, 나는 나를 사랑한 엄마의 마음을 느끼며 봤다.
사진을 보며 나의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나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준 엄마 덕분에 지금 나도 내 아이를 사랑하며 정성으로 키우는 엄마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도 훗날 수지의 어릴 적 사진을 차곡차곡 모아 수지에게 선물로 주는 날이 오겠지.
그날의 수지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괜히 뭉클하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니 모든 게 꿈만 같다. 많은 일들을 겪고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정말 신기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인생이 소풍 같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잠깐 놀러 나온 소풍. 너무 무겁고 심각할 필요 없이 그냥 가볍게 즐기다 가는 소풍처럼 인생도 그냥 이 순간을 만끽하며 즐기면 되는 거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행복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가볍게 웃을 일들도 많고,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가다보면 이 소풍은 잊지 못할,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 될 거란 마음이 든다.
너무 멀리 내다보고 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기뻐하며 살다 보면 미래의 나와 내 아이도 자연스레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고 있을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남는 건 사랑한 시간, 행복한 추억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사랑하고, 충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지.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사랑이 담긴 마음, 행복을 느낀 추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