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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차려주는 장난감 밥상

하루 끝에 있는 행복

by 행복수집가

수지는 요즘 저녁마다 주방놀이를 즐겨하고 있다.

물이 나오는 장난감 싱크대를 가지고 와서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한다.


놀이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설거지를 해서 식기를 깨끗하게 준비한다. 그리고 종이에 글자를 끄적끄적 적어 메뉴판을 만든다. 이 메뉴판은 일반 메뉴판이 아니라 키오스크다.


이렇게 다 준비가 되면 수지는 나에게 음식 주문을 하라고 한다. 나는 입으로 '띠띠' 소리를 내고 손가락으로 키오스크를 꾹꾹 누르며 주문을 한다.


그러면 수지는 "카드를 넣어주세요."라고 한다.

내가 카드를 넣고 띠띠 소리를 내면 "카드를 빼주세요.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주문을 다 하고 나면 수지가 "몇 명이예요?"라고 물어본다. 내가 몇 명이라고 대답하면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또박또박 말한다.


그동안 식당에서 주문하는 걸 대충 본 게 아니라 자세히 보고 들은 모양이다.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와 똑같은 말을 하는 수지가 너무 귀여워서 깔깔 거리며 웃었다.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면 수지가 장난감 그릇과 냄비에 정성스레 음식을 담아준다. 작은 주전자에는 물을 담아서 커피라며 작은 찻잔과 같이 준다. 아주 세심한 꼬마 사장님이다. 커피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늘 기본 옵션으로 준다.


그리고 음식을 주기 전에 수저를 먼저 세팅해 준다. 이것도 그냥 대충 던져놓는 게 아니다. 보통 식당 테이블에 수저서랍이 있는 것처럼 수저를 내 앞에 놓고 그 위에 네모난 뚜껑을 덮어준다. 서랍 안에 수저가 있는 것을 비슷하게 따라 한다.


이 놀이 하나만 해도 수지의 섬세하고 귀여운 포인트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귀여운 사장님 얼굴과 행동을 보느라 즐겁다.


그리고 수지는 장난감 음식이 담긴 작은 그릇들을 하나하나 직접 내 앞에 놔준다.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앞에 음식을 놔두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또 다른 음식을 가져다준다.


그게 귀찮을 법도 한데,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음식을 하나하나 갖다 준다.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이 놀이에 몰입한 수지를 보면 그저 귀엽다.


비록 장난감이지만 이렇게 내 식사를 정성스레 챙겨주는 수지를 보면 대접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하루 끝에 조금 지쳐있는 나에게, 수지가 차려주는 장난감 밥상이 왠지 모를 위안이 된다. 이 놀이를 하면서 매일 기분 좋게 하루 마무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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