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3
내 사무실 책상과 파티션은 온갖 '예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뱃지, 귀엽고 알록달록한 엽서, 스티커, 피규어, 화분, 꽃.
일하는 자리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지난달 업무가 바뀌며 자리를 옮기게 되자, 그 물건들을 걸러내자고 생각했다.
서랍에 가득했던 잡동사니들도 처분했다.
가장 버리기 고민되었던 건 그동안 썼던 업무수첩이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왠지 모르게, 2017년 어떤 회의 기록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게 있던 거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치밀하고 기밀한 일도 아닌 데다 결정 난 일들은 어떻게든 제대로 된 매체에 기록되어 있을 테니, 업무 수첩에 남아 남아 있는 건 아이디어나, 일이 아니라 '불안'인 것이다.
내가 뭔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까먹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상황이 달라져 과거의 기록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업무에 대한 쓸데없는 불안들.
아직까지 그런 일은 벌어진 적 없었고,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필요한 건 정리되지 않은 내 수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정제된 정보와 기록일 것이다.
잘못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불안할까?
그 불안은 어쩌면, 나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의 능력, 나의 기억, 나의 역량에 대한 갈증도 함께.
일을 시작한 지 만 10년, 지금 회사에 다닌 지도 만 7년을 넘어섰다.
나름의 방법과 판단으로 그 시간 동안 내 이름으로 일을 해왔다.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 된 것도 아니지만
그냥 내 자리에서 사고 치지 않고,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면서 내 몫을 일했다는 것에 만족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고여있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불안 속에서 더 깊어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
‘일에 너무 대단한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고,
그 일을 하는 나를 너무 일에 비해 과소평가를 할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스며 나온다.
예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일까, 그간의 과정들이 교훈이 되어 천천히 우러난 것일까.
그렇게 예전 수첩들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파티션에 있던 장식들은 다 나눠주고, 미련 없이 버렸다.
이제는 모니터 옆에 두 장의 엽서만 붙어있다.
하나는 귀여운 강아지 그림엽서고, 다른 엽서는 ‘今(지금 금)’글자가 쓰인 엽서다.
일하다 가끔씩은 숨 돌릴 때도 필요하고, 지금에만 집중해야 할 버튼도 필요하니까.
하루에 8시간 머무르는 이곳에서 불안해하고, 자책하지 않기.
미래와 과거 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일하기. 램대리가 꿈꾸는 미니멀이랄까.
소심한 미니멀리스트의 팁!
일을 할 땐, 오늘의 나를 믿고 과거나 미래의 나에게 기대지 않기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만 두고, 자리를 정리하자!
사무실이 깨끗하면 기분이 조크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