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2
이사오면서 엄청난 물건들을 버렸지만, 아까워서 그대로 들고 온 것들도 많다.
친구가 추천했다. “당근마켓에서 팔아봐”
그런 어플리케이션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무언가를 파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사를 핑계로 남편의 위시리스트였던 사운드바를 구입했기에 애물단지처럼 거실에 놓여있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첫번째 매물로 내놓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체중계도 두 개나 있고, 유행이 지나 더이상 쓰지 않는 카드목걸이도 있었다. 세 개의 물건을 정성껏 찍어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10여년 인터넷쇼핑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녹여,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 원하는 사진의 각도를 나름 고심해 올렸다.
‘당근’
무척이나 귀여운 알람이 울렸고, 체중계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와우! 이렇게 쉬운거였어?
다음날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왠걸, 당일에 그는 내 연락을 무시했다. 그 체중계를 사겠다는 사람이 이어서 나타났는데도 첫 구매자와의 의리를 지켰건만! 당근의 도(道)는 어디로 갔는가?!
첫 구매자에게 작은 내상을 입었지만, 구매자들은 계속 나타났다.
스피커는 꽤나 고가였음에도 쿨구매한 사람이 있었고, 그 분을 위해 나는 분리수거함에서 최적의 박스를 찾아 정성스레 택배를 부쳤다. 이삿짐들을 정리하다보니 쓰진 않을 것 같지만 당근마켓에 올리면 쓸만한 물건들이 속속 등장해, 한동안 우리집의 주말 일정은 아침 당근마켓 업로드, 오전/오후 당근마켓 거래 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어딜 놀러가지도 못한 덕분에 나는 그 경쾌한 ‘당근’을 기다리며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고, 낯선 사람들과 주황색 대화만으로(당근마켓이라 그런지 대화창도 주황색이다) 서로 믿고, 거래하고, 만나는 그 과정이 꽤 흥미진진했다.
사실 부산에 와서 온 7년간 만난 부산 사람보다, 당근마켓을 하면서 2개월 동안 만난 사람 부산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 것 같다. 제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로 물건을 고르고, 내 물건들을 쓰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중독성이 있어서, 중간중간 쿨타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나는 주말마다 기다린다. 그 경쾌한 '당근' 소리를.
소심한 미니멀리스트의 팁!
내게 필요없는 물건들도 누군가에게 쓸모 있게 쓰이는 당근마켓! (광고아님)
저마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재미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