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램램 Sep 15. 2020

인터넷 쇼핑 금지령

옷장 정리 3 

당근마켓 판매상품이 100개가 넘어섰다. 

와우. 

더 이상 쓸모가 없거나, 

처음부터 별 의미가 없었거나,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아까워서 가지고만 있던 것들을 솎아내서 올리고 기다리면 

누군가는 그 물건을 위해 시간과 돈을 써서 가져간다. 

물건들에게 새로운 삶을 줄 수 있어서 나도 기쁘다.

하지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아까워서 가지고만 있던 것들'은 앞으로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어제는 옷장 정리를 했다. 

준비물은 전신 거울과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지. 

연초에 이사하면서도 옷 한 무더기를 버렸고, 

조금씩 조금씩 버리거나 팔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다. 

버린 만큼 산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휴직 덕분에 꾸미고 밖에 나갈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올여름의 90%는 운동복, 티셔츠+반바지 조합으로 보냈다.  

그 덕분에  '입고 싶은 옷, 입을 옷'들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진 것 같다.

좋아하는 옷, 입고 싶은 옷만 남기려고 전신 거울 앞에서 한바탕 패션쇼를 했는데. 

버릴까 말까 고민되는 것들은 거실에서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진 남편에게 보여주며 판단을 맡겼다. 

(남편의 패션에 대한 안목은 디테일 하진 않지만, Yes or No 사이에서는 꽤 유용한 판단력을 보여준다.) 


나의 옷 골라내기 방법은 이러하다.

나의 경우 하의보다 상의가 더 많기 때문에  

기본 하의 몇 가지(블랙진, 청바지, 슬랙스)를 입은 상태에서  

상의를 바꿔 입는다. 

상의는 셔츠-블라우스-티셔츠 순서대로 입는다. 

(단추 달린 옷들은 입고 벗는 게 귀찮기 때문에 의욕이 있을 때 먼저 하는 게 좋다)

우선 있는 그대로 입어보고, 뭔가 갸웃한 애들은 하의를 좀 바꿔보거나

아우터(카디건, 점퍼, 재킷)를 걸쳐보고 판단한다. 

대부분의 상의는 끝단을 하의에 넣으면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편이고, 

어떤 옷은 청바지와는 지독하게 안 어울리는데 슬랙스에 딱인 경우도(반대인 경우도) 있다. 

아이템을 섞어서 코디를 해보고 그럴듯하면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좋다.  


옷은 네 가지로 나눴다.  

그대로 입을 것, 수선이나 다림질을 제대로 해서 입을 것, 팔 것, 버릴 것 

그대로 입을 것만 다시 걸고, 나머지 3개는 바닥에 분류해 둔다.

 

바닥에 분류해 둔 아이들을 다시 차근차근 보면서 

내가 이걸 왜 샀더라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1. 남색 원피스 

작년 여름에 구입해서, 두 번인가 입었다. 

습관처럼 들어가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왠지 원피스가 사고 싶은데? 하는 생각으로 충동구매한 옷이다.

딱히 이 옷이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뭔가 사고 싶어 져서' 산거라 판단력이 흐려졌다. 

입고 보니 어깨 핏이 어색해서 안 입게 되었다. 


2. 아이보리 원피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쇼핑몰에서 본 모델 사진이 너무 맘에 들어  

오픈하는 시간까지 맞춰서 샀는데 

받아보니 길이도 짧은 데다 전체적으로 포대자루 같은 느낌이 되었다. 

하.. 그때 반품을 했어야 했는데... 

살 빼서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옷장에 둔지 3년 만에 옷장을 나왔다.

그 3년 동안 살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3. 파란색 리넨 셔츠 

잘 입던 파란색 리넨 셔츠가 낡아져, '리넨 셔츠'를 네이버에서 검색했다. 

검색해 나온 쇼핑몰 사진을 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구입했다. 

사진은 참 잘찍는 쇼핑몰이었다. 

입자마자 너무 심하게 구겨지고, 마감도 엉성해 

누구한테 주기도 미안한 품질이라 버리기로 했다. 



너무 쉽게 산건 너무 쉽게 버리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옷이 인터넷으로 쉽게 구입한 것들이다. 

사진이나 리뷰만 보고 산 거라 택배박스에서 꺼내 입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인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배송비 아까워하지 말고 반품해야 하는데 

그리 비싼 옷들도 아니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강하지 않아서  

혹시 가끔 입게 될지도 몰라. 살 빼서 입으면 돼 등등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옷장에 넣는다. 

그리고 옷장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옷장에 버린 셈이다. 


이번 옷장 정리 후 나의 다짐은 

'앞으로 한 달간 인터넷 쇼핑 금지령'이다. 팔로우하던 인스타그램도 다 취소했다. 

기왕 옷을 살 거면 차라리 좋은 옷을 입어보고 사는 것을 첫 번째 규칙으로 하고,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사게 되면, 입어보고, 바로 반품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두 번째 규칙이다. 


물론 옷을 사지 않고, 가지고 있는 옷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결론이긴 하지만. 

옷과 쇼핑을 좋아하는 나의 열정이 그리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터라.... 

그나마 나에게 현실적인 규칙을 마음에 새기며, 스스로를 채찍질 해볼까 한다. 


 소심한 미니멀리스트의 팁! 

인터넷 쇼핑 반품을 두려워하지 말자. 
반품 배송비 3천 원 아끼려다 옷장에 보관만 하게 된다.  
결국 당근마켓에 팔 때는 1만 원도 못 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램대리의 책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