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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Jul 09. 2020

운전을 합시다 2

삼수했습니다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기세는 좋았다. 

평생을 피하던 일에 도전해 성공하다니! 에서 오는 만족감이 최고조였다. 

하지만, 2018년 여름은 너무나 더웠던 것. 

바로 운전학원에 등록을 해야 했지만, 

더위로 미루고, 바빠서 미루고, 추워서 미루고, 또 바빠서 미루다 계절이 몇 번 지났다. 

필기시험 유효기간이 1년이라, 2019년 7월까지 기능시험에 합격해야 했는데 

2019년 6월에서야 운전학원 등록을 하러 가는 나는 꽤나 비장했다.

필기시험 합격증을 전달하고, 등록하니 담당자가 말했다. 


"정말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버티셨군요"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기능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첫 선생님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브레이크, 엑셀도 잘 모르고, 밟는 법도 잘 모르니 덜컹덜컹, 삐뚤빼뚤. 

브레이크 밟을 때마다 이리 쏠렸다, 저리 쏠렸다. 노란 차에 탄 두 사람 다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분이 몇 번인가 진심 어린 화도 내셨다.) 

T자 주차에는 도전할 생각도 못하고 차를 움직이고, 조작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갔다. 

두 번째 수업에서 T자 주차를 배우긴 배웠는데, 공식을 외우기는커녕 도대체 바퀴가 어디서 어디로 굴러가는지 이해가 안 됐다. 

세 번째 수업은, 공식적으로 마지막 수업이었다. 

더위 속에 땀은 주룩주룩 나고, 그냥 빨리 시간이 지나가버렸음 했다. 

시험이 언제냐고 선생님이 물으시길래, 며칠 뒤라고 했더니

'불안하긴 한데,  우선 한번 보고 감을 잡으라'는 답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오르막 구간에서 연석에 부딪힌다. 

그럼 바로 전체 스피커로 '실격'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학원 스탭이 와서 나를 내려서 옆에 태우고, 슝 하고 학원 앞으로 데려다준다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그냥 실격이라 우선 바로 다음 주로 시험을 잡았다. 


두 번째 시험, 긴장 최고조의 마음으로 차에 올라타, 예의 그 오르막을 무사히 통과했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살짝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하는데, 어라? 그대로 화단에 올라탔다.

또다시 '실격'소리가 들리고, 학원 스탭이 왔는데, 패닉이 된 나는 브레이크도 못 밟고 엑셀과 브레이크 사이 우왕좌왕하다가 간신히 시동을 끈다. 지금도 헛돌던 엔진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다음 날, 나는 김천으로 운전 유학을 떠난다.  

당시 남편과 나는 김천-부산을 오가는 주말부부였는데, 상대적으로 한산한 곳이 많은 김천에서 남편이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 한 것이다. 

남편은 첫 번째 기능 시험 전에 오락실에 가서 마리오 카트와 이니셜 D를 함께 해주기도 했다. (소용은 없었다.) 


김천의 어느 한가한 공터에 다다라 남편이 나에게 운전석을 양보했다. 

이 무거운 차를 내 손발로 작동시켜 안전하게 움직여야 한다니, 

여긴 학원도 아닌데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앉자마자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하는 나를 본 남편의 얼굴에 스치던 회색빛 불안감이 기억난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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