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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Aug 18. 2020

운전을 합시다 3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공터에서의 주행 연습,

엑셀과 브레이크를 구별한 뒤, 아주아주 처언천히 차를 움직였다.

다행히 핸들은 내 두려움보다 묵직하게 움직여서  

차가 갑자기 어디론가 도망가고 그러지는 않았다.

아 핸들만 잘 쥐고 있으면, 큰 일은 안 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핸들을 어찌나 꽉 쥐었던지, 손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몸에 힘을 뺀다는 건, 무서움을 극복하는 데 있어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한다.


수영을 배울 때, 선생님에게 힘을 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물을 무서워한 데다, 몸을 쓰는 법을 모르는 어린이였던 나는

힘을 빼라는 게 뭔지, 다리를 곧게 뻗으라는게 어떤 감각인지 전혀 와 닿지 않아서  

철푸덕 몸부림치다 꼬르륵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결국 친구들이 레인을 가로지를 때, 혼자 수영장 구석에서 선생님에게 특별 수업을 들었더랬다.

뒤쳐지는 느낌에 수영 수업이 정말 가기 싫었지만 결석 또한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던 착한 어린이였기에

매번 반쯤 우는 얼굴로 수영센터로 가는 버스에 오르곤 했다.

그렇게 나머지 공부가 이어지던 중,

정말 갑자기! 문득! 어쩌다가! 다리를 뻗고 힘을 푼다는 느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참방참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본 선생님은 정말로 기뻐해 주었다!

(그다음부터는 혼자 자유수영도 나가고 어떤 아줌마에게 수영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지만.

겁많음+몸치 두 가지 개성이 성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다 까먹어버린 것 같다.

수영을 다시 하는 것도 위시리스트 중 하나다)




몸치로서 살아온 지 30여 년, 몸에 힘을 뺀다는 것은 정말로,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몸을 지배하면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으로 변한다.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아니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존재가 된다.

뇌에서 팔다리로 향하는 모든 신경이 서버가 다운된 것 같다 해야 하나.

수영을 할 때, 운전을 할 때, 자전거를 탈 때. 자신에게 강력한 불신을 가져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

 

그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동반되고, 온갖 분노도 요동친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나서,

도대체 인간은 왜 자동차를 발명해서,

세상은 왜???!!!!


기어를 D에 놓고, 엑셀 한번 밟지 않고 공터를 유영하던 (운전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느린 속도였다)

와중에도 나의 머릿속에서는 인류의 역사와 나라는 존재,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휘몰아치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하나 배우면서 왜 이렇게 요란한 핑계를 대느냐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에 있을 몸치 동지들은 나의 이 시커먼 두려움을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었고,    

무엇보다 나의 심리 상태를 전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꾹꾹 참으며 나를 가르친 남편에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2시간을 넘게 공터를 돌았던 것 같다.

우회전 좌회전을 위해서 어디서 어떻게 핸들을 돌려야 하는지 조금, 아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전은 내 몸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류의 기술력이 응집된 차를 통해서 하는 것이라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기능시험의 하이라이트, T자 주차를 위한 연습이 시/작/된/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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