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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Aug 20. 2020

운전을 합시다 4

연습이 답이다

학원에서 T자 주차를 배울 때, 선생님들은 매뉴얼대로 외우라고 가르친다. 

어깨에 저 연석이 올 때 우회전, 저 조형물이 위치에 왔을 때 멈추고, 핸들 돌리기 등등 

시험장에 맞춰서 연습하기 때문에 시험에서는 탈락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시험장 이외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라는 게 문제다. 

사실 나는 바퀴와 핸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지도 와닿지 않았던 데다 

공간지각 능력이 정말 엉망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기는 하는데 

대체 차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트렁크에서 꺼낸 이런저런 물건들로 T자 주차를 위한 포인트를 만들고 

남편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다고 해서 확 이해가 되고 그러지는 않았다.

멍..한 상태로 운전석에 앉아서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핸들을 약간 꺾고,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이케이케 돌리고, 

이상한 곳으로 차가 가다가, 

점점 어디를 보고, 어디에서 핸들을 돌려야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실 좀 까먹었다)


수십 번쯤 오락가락하다 보니 점점 오차가 줄어들어서 점점 똑바로 차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걸 한 번에 딱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있긴 있는 걸까? 

존경한다. 


땡볕 아래 몇 시간을 차에서 씨름하다 보니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도 결국 차를 모는 흉내 정도는 내게 된 자신에게 신기해하면서 그날의 연수를 마무리했다. 

김천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의식을 잃은 듯 잔 기억이 난다. 



연수가 끝났으니, 이제 실전이다. 

손에 남은 핸들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면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8시에 집합해서 랜덤 순서로 시험을 보게 되는데 

지난번 시험에서 본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붙었나? 

다행히 초반에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아래가 우리 시험장의 기능 코스였는데 

나는 출발 후 경사로에서 1번 떨어지고, 

경사로 직후 좌회전에서 2번째 떨어졌기 때문에 

그보다 멀리 가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지난번 시험에서는 오만방자하게도 샌들을 신었었다.

발바닥에 닿는 미세한 브레이크의 느낌을 계속 감지해야 하거늘!

세 번째 시험날은 그래서 발에 착 붙는 슬립온을 신고 갔다. 


두근두근 시험차량에 타서, 기본 조작은 쉽게 통과했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탈락 지점을 무사히 통과하고, 

두 번째 탈락 지점도 무사히 통과했다. 

내가 핸들링을 정상적으로 하다니! 

기쁨도 잠시 두근두근 T자 주차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나 혼자 산다>에서 마마무의 화사도 T자 주차에서 탈락한 바 있다.

시험 응시자에게는 가장 무시무시한 코스가 아닐 수 없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진입했다. 머릿속으로 외운 공식을 순서대로 하나씩 해치우면서

무사히 후진과 파킹을 해내고, 

연석에 부딪히는 불상사 없이 주차구간을 빠져나왔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약간 미친 사람처럼 헤헤헤 웃었던 것 같다. 


'내가 T자 주차를 해냈어!!' 


거기까지 실점 없이 달리다가 마지막 구간인 가속 구간에서 가속을 좀 늦게 밟는 바람에 

약간의 감점을 당했고, 드디어 합격입니다! 소리를 들었다. 

학원 스탭에게 끌려가는 대신 내 손과 발로 종료 구간까지 다다르다니 신이 났다. 

이게 이렇게 기쁠 일인가.... 


합격 도장을 받고, 주행 수업을 등록하고 학원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신나게 자랑을 했다.  

그것이 2019년 7월 9일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분명 주행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수업 날 갑자기 출장이 잡혀서 수업을 취소하게 되고, 

시간을 또 흘러 흘러 2020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놀랍게도 아직 끝나지 않아서 5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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