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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Sep 07. 2020

운전을 합시다 7

안녕 마이바흐

스무 살을 훌쩍 넘어서도 운전면허를 딸 필요성을 잘 못 느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굳이 서울의 복잡한 거리를 차를 몰고 다니겠다는 생각을 안 했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야겠다 생각했던 건

영화 제작부 막내 시절이다.

제작부 막내가 되어야지! 하고 제작현장에 들어간 게 아니라

제작사의 마케팅 담당이었는데

대표님이 '제작현장에 일손이 부족하니 와서 도와라'가 되었고

그렇게 끌려간 제주도 현장에서부터 제작부 막내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내 생각에 제작부 막내의 필수조건은 운전능력과 체력이다.

슬프게도 나는 둘 다 없었다.


특히 제작부는 항상 스타렉스나 탑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데

나와 (같이 끌려간) 내 친구 둘 다 면허가 없어서

현장에 갈 때마다 쟤네들을 어느 차에 싣고 갈 것인지 제작실장과 선배들이 고민을 해야 하는

그런 짐짝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구박당할 때마다 나는 꼭 1종을 따겠다! 탑차, 발전차 다 몰아주겠다! 객기를 부리곤 했었다.





하, 1종 면허라니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스무 살이었다면 넘치는 혈기로 트럭에 올라탔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수능 직후 면허를 딴 친구 중엔 1종을 딴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서른이 지나니 객기도 사라지고, 내 몸뚱이를 어떻게든 아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눈물의 주행 연습이 끝나고,

2주 후에 시험 일정을 잡았다. (방학 때라 일정 잡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습을 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행 연습도 등록하겠다고 접수처에 말했더니 

시험 직전에 2시간 주행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라고 하셨다.

접수를 하면서도

'안될 거야 나는.... ' 싶었지만 접수증을 들고 학원을 나섰다.


2주 동안 나는 소리 없이 고통받았다.

백수여서 별로 스트레스받을 게 없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게 다가왔겠는가!

그 시간 동안 나는 꽤 스트레스받는 백수였다.

 

세상이 좋아 유튜브에 운전 관련 영상도 정말 많다.  

그리고 어떤 친절한 청년들이 시험코스 4개를 모두 영상으로 찍어서 올려놓았다.

코스를 외우는 것도 중요했기에, 슬픔과 스트레스가 엇갈리는 마음으로 종종 영상을 보았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유튜브에 재밌는 게 너무 많은데, 나는 운전 영상을 봐야 한다니 ㅠㅠ


그렇게 2주가 지나갔다.

대망의 주행 연습 및 주행시험날.

 

가기 싫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포기하고 싶어..... 난 안될 거야.... 싫어... 가기 싫어....

포기하고 그냥 필기부터 다시 시작할까? 나는 안될 거야... 못하는걸 왜 해야 하지?

그냥 다 포기할까....


아침 9시까지 학원에 가야 했는데 출발 직전에 직전까지 갈까 말까 고민했다.


진짜 정말 아주 솔직히!

돈이 아까워서 출발했다.

수업 등록비에 시험비까지 10만 원이 넘고,

처음부터 다시 시험 보면 또 수십만 원이 깨진다.  

이 수치스러운 돈지랄을 하면 몰려올 죄책감이

운전에 대한 무서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2시간의 수업은 지난번과 다른 선생님이 맡아주셨다.

2주 만에 운전석에 앉았더니 모든 기억이 리셋이 되어  

액셀을 밟으며 시동을 걸어 버렸다(이러면 차에서 엄청난 소리가 난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분은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해주셨다.


옆에 계신 분이 느긋해서였는지, 생각보다 코스 공부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시동을 걸고 나서는 순조롭게 코스를 돌았다.

운전할 때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붙는 편이었는데 제법 중앙에 잘 맞춰 가서

잘하고 있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속도는 여전히 20km/h를 겨우 넘는 거북이 운전이었지만

지난번에 비해 실수 없이 제정신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대로만 하면 시험도 칠 수는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의 연습이 끝나고, 학원에서 지난번 수업 선생님을 만났다.

서로에게 고통이었던 그녀와 나의 여섯 시간의 추억....

내가 인사를 하자, 오늘은 좀 괜찮았냐며 힘내라고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흑, 감동이었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그렇지 따뜻한 분이었다.




점심을 후다닥 먹고,

도로주행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험을 치기 전에 수험생들은 강의실에 올라가 간단한 안내와 교육을 받는다.

시험감독관이 해준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주행 시험도 운전을 배워가는 과정 중 하나 일 뿐이다'


시험에 붙는다고 저절로 운전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 떨어진다고 그 과정이 끝난 것도 아니니 시험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서

왠지 위로가 되었다.


운 좋게도 7명 정도의 수험생 중에 두 번째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험 보는 사람들이 함께 차에 타서 시험이 진행됐었는데

코로나 시국 때문에 1명씩만 차에 탑승해 시험을 치렀다.


4개의 코스 중 랜덤으로 하나를 배정받는데

나름 여러 번 오갔던 코스가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동을 걸기 전에 코스를 보고 익힐 시간도 주기 때문에

코스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번 깊게 심호흡하고, 순조롭게 시동을 걸고, 학원을 나섰다.

이상할 정도로 별문제 없이 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실격만 하지 말자'가 마음의 목표였기 때문에 의외로 코스를 마무리 해가는 나의 모습에 좀 놀랐다.

약간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옆에서 체크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감점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합격선은 70점. 참으로 너그러운 커트라인이다.


코스의 2/3쯤 지났을까, 신호 대기할 때 힐끗 채점 기계를 보니 7X점이 찍혀있었다.

앞으로 실격만 안 하면 합격이었다!

약간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고난과 역경이 시작되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은 부촌으로 유명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아니겠는가.

내 앞에 갑자기 마이바흐가 등장한다.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마이바흐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나는 끝이다.

으어어어 마이바흐가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

머릿속에 느낌표 물음표가 뒤죽박죽 섞이는 기분.


직진하던 중 청색 신호가 갑자기 노란 신호로 바뀌고, 내 안의 쫄보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지나가도 됐을 타이밍이었는데.   

결국 정지선을 넘기고 만다.  

감점.... 또르르...  


결국 69점으로 코스를 마무리했다.

감독관 분은 친절하게 내 실수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다음번엔 꼭 그 부분 조심해서 시험 치르라고 말이다.

실격도 안 한 데다가, 실수만 안 했으면 합격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신감이란 게 생겨났다.




'그랬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참 중독성이 있다.


오른쪽 차선을 밟지 않고 좀 비껴갔더라면,

차선 변경할 때 조금 더 여유를 두고 갔더라면,

그때 마이바흐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합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치만 그 아쉬움보다는

오늘 아침에 그냥 다 포기했었더라면,

전혀 알지 못했을 소소한 성취감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마이바흐가 뭔지 알아서 다행이다.

뭔지 모르고 사고쳤더라면, 그것도 큰 일 아닌가?


마지막으로 나의 쪼그라든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마이바흐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저장해둔다.




생각해보니 마이바흐 때문에 불합격했다는 핑계는 꽤 멋진 것 같다.

고마워 마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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