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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Aug 27. 2020

운전을 합시다 6

통곡의 강

잠들기 전에 단편 소설 한두 개라도 읽고 자야지, 하고 침대 맡에 책을 둔다.

하지만 핸드폰만 보다가 잠드는 날이 더 많았다.

엊그제는 마음을 먹고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집어 들었다.

천천히 한 개씩 읽다 보니, 침대 맡에 있은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 날의 소설은, 장류진 작가의 <연수>였다.

책장을 덮으며 '아 역시 작가들은 다르구나' 하며 감탄의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써 온 운전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 무서움뿐 아니라

주인공의 삶, 엄마와의 관계, 낯선 타인과의 운전 연수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파도가

단편 소설에 담겨 있었다. 너무도 명확하게, 간결하게, 아름답게.

 

주차선 뒤편 화단에 한쪽 뒷바퀴를 걸친 채로 강사한테 혼이 났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은 학원 전체에 나 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런 주제에 도로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운전대를 잡은 나, 그러니까 엑셀과 브레이크를 순간 헷갈리거나, 깜빡이를 깜빡한 채로 차선을 바꾸거나, 좌회전하면서 중앙선 왼쪽으로 진입해 역주행하는 나 때문에 도로의 약속된 질서가 망가지고 모든 게 박살날 것만 같았다

장류진 <연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마음을 읽힌 거 같다고 해야 하나, 단단한 동지의식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놀랄 정도로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운전에 대한 감정은 밑줄을 쫙쫙 긋고 싶을 정도로 나와 똑같았다.

참 다행이었다.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구나.


눈앞을 스쳐가는 차들을 보면서, 저 속에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모습이 도무지 상상이 안되고

스스로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끼게 되는 그 막막함.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는 그 절망감.


소설의 주인공은 9년 전에 어렵사리 면허를 따고, 아직은 두려움을 한껏 품은 채 한 맘카페에서 추천받은 강사에게 운전연수를 받게 된다. 그녀의 경험과 그녀의 변화가 왠지 남일 같지 않았다.




자, 여기, 주인공과 달리 이제 겨우 도로주행을 처음 시작한 내가 있다.

내 옆에는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 아직 잘 모르는 선생님이 앉아있다.

선생님은 50대 중반의 여자분이셨는데, 여자들도 운전 잘 할 수 있다고 멋지게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나의 실력을 깨달으시며 목소리가 높아지고 급해졌다.

선생님도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해운대구의 교통을 마비시킬 뻔했다.


3시간의 수업을 2번 들으면 주행시험 자격이 주어진다.

정말 택도 없는 시간이다. 30시간을 들어도 부족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첫 50분간 두 개의 코스를 돌았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에 정신이 없어서 코스가 뭐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자주 다니는 길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운전석에서 보는 풍경은 전혀 달랐다.

(풍경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50분 만에 두 사람은 진이 빠질대로 빠졌다. 남은 두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하나 싶었다.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옆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엄마한테 혼날 때? 수련회에서 기합 받을 때?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이 한심하고 무능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정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찌어찌 3시간이 끝났다.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힘을 빼!'였다.

 

속에서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아니 어떻게 힘을 빼요 ㅠㅠㅠㅠㅠ 제가 당장 저 차를 들이박을 수도 있는데 ㅠㅠㅠ'


다음날에는 그 선생님을 만나지 않길 간절히 바랬는데, 다음날에도 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도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텐데...

전 날보다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몇 분 만에 박살이 났다.

나는 여전히 버벅거렸고, 선생님은 여전히 화를 참고 있었다.

3시간이 지나고, 모든 멘탈은 다 조각조각 났다.

마지막에 선생님은 새벽 시간에 차가 없으니 남편과 나와서 연습을 좀 더 하라고, 힘을 내라고 하셨지만

솔직히 크게 기대 하시진 않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영강 산책로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내 옆을 지나가는 차 들이 다 원망스럽고 부럽고 보기 싫고 그랬다.  

남편에게 나 운전 같은 거 안 할 거라고 난 아마 죽을 거라고 화를 내면서 엉엉 울었다.

밖에서 그렇게 펑펑 운 건,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이었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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