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따라하고 싶었던 제목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시골집은 제주도 서쪽, 바다에서 한참 먼 중산간에 있다.
어려서 육지로 떠나 온 나는 방학 때 제주도에 가서 일주일 정도 지내곤 했다.
제주시에 있던 큰 이모네나, 외할머니네에서 머무르는 건 아무렇지 않았지만,
시골집에 가는 건 하기 싫은 데 꼭 해야만 하는 의무 같은 거였다.
어린 시절에는 멀미를 자주 해서, 꼬불꼬불 시골길을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근처에 다다르면 근처 축사에서 맴도는 소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골집은 아주 오래된, 전형적인 제주도 주택 구조의 슬레이트 지붕 집이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데다, 푸세식이라 화장실에 절대 안 가려고 노력했다.
밤에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꼭 동생을 깨워서 같이 나갔다.
마룻바닥에선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가 났고, 천장도 낮았다.
밤에는 할머니가 주시는 아주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야만 했다. TV 채널도 몇 개 없고, 근처에는 밭뿐이고, 금방 문을 닫는 구멍가게 하나뿐이라 늘 심심했다.
그나마 겨울에는 외양간 소에게 지푸라기를 주고, 소 콧잔등을 긁어주고 놀곤 했는데
여름에는 소들을 산에 방목해 외양간이 비어 있어 정말로 정말로, 할 일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투리는 제주시에 사는 사촌들보다 심한편이라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았다.
두 분이 물어보시는 건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하고 있냐,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있냐.
이 반찬 먹어봐라, 밥 더 먹어라, 어서 자도록 해라 정도의 대화였지만.
내가 말을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잘 알아듣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 대화는 금방 끊겼고,
가끔 엄마나 아빠가 통역을 해주시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밭에 나가시면 낮이 참 길었다.
낮잠도 자고, TV도 보고, 외양간 소랑 놀고 돌아와도 시간이 참 천천히 갔다.
그렇지만 소중한 기억들도 많았다.
여름밤 평상에 누워 어느 때보다 많았던 별들과,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고
어느 겨울날 밭에 나가 모닥불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구워 주신 군고구마를 먹기도 했다.
송아지가 태어난 날, 어미소가 놀랄까 구석에 숨어 송아지가 걸음마를 하는 걸 구경하기도 했다.
귤은 뭐 말할 것도 없다. 겨울이면 항상 귤이 쌓여 있었고 온종일 원없이 먹었다.
할머니가 4년 전, 할아버지가 2년 전 돌아가시고, 시골집은 한동안 비어있다가,
부모님이 제주로 귀향하시면서 새로 태어났다.
삐걱거리던 바닥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정도로 내려앉았고, 슬레이트 지붕도 낡아서,
집 틀만 그대로 두고, 거의 다 새로 태어나는 수준의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새로 태어난 시골집은 바닥도 단단하고, 집 안에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시골집에 누워 잠이 들려던 참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버튼을 누른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시골집에 오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그 어린이가 순간 이동 후 어른이 되어 새로운 방에, 새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느낌. 시골집은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았는데 나도, 시골집도 이렇게 바뀌어 있는 게 어색할 정도로 신기했다.
그리울 줄 몰랐던 것들이 그리워질 때 더 먹먹해지는 것 같다. 소중함을 모르다가,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있을 때도 많다.
그 먹먹함과 서글픔에 익숙해져 버릴까 싶어,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다.
시골집, 할머니, 할아버지, 귤나무, 까만 돌담, 시골의 냄새, 하늘이 높은 풍경들.
멀어지기도, 변해가기도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두렵고, 걱정되고, 혼란스러운 일상들이 나를 흔들어도,
내 곁에 머물러 뿌리내린 소중한 시간과 사람이 단단하게 나를 지켜준다는 걸 잊지 않고 싶어서
고향으로 향하는 건 아닐까.
제법 어른이 된 듯한 느낌으로 고향 방문기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