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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Dec 15. 2020

<전람회>_내 겨울의 배경음악

나도 모르게 입가에 맴도는 멜로디는 그 노래를 듣던 기억을 불러들이는 일.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전람회 노래를 흥얼거렸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가.


앨범을 재생목록에 넣고 듣다 보니 씩 웃음이 났다.

노래에 집중하다 순식간에 몇 곡이 흘러가서 회사에 늦을 뻔했다.


90년대의 힙을 담은 전람회의 1집 앨범 재킷


전람회는 내 겨울에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매일같이 학원을 다닐 때에도

대학 입학 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때에도

카세트 플레이어에 항상 전람회 테이프가 들어있었고,

방에 들어서면서 항상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섞인 설익은 노랫소리가 방을 채우면

바깥의 추위가 잊히고 따뜻한 내 방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입김이 나올 때면, 생각나는 노래


1집 앨범 수록곡 「여행」에는 김동률, 서동욱의 목소리와

프로듀서였던 신해철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대학가요제 얘기를 하던 두 사람도,

이 노래를 듣던 나도 나이가 들었고,

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상하다.라는 말 밖에는 마음을 설명할 수 없을.




영화 <건축학개론>의 그 노래, 「기억의 습작」. 수지는 이 영화에서 CD플레이어를 처음 봤다고 한다



전람회는 세 번째 앨범 『졸업』을 내고 정말 '졸업'했다.

김동률은 계속 음악을 했고,

서동욱은 음악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학교 수업 특강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기타를 잡은 뮤지션 대신

정장을 입은. 유명한 컨설팅 펌에 다니는 남자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그에게 '전람회'의 기억은 더욱 특별하게 남지 않을까 추측해볼 뿐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 덕분에 여전히 회자되는 노래는 「기억의 습작」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3집 『졸업』의 「우리」였다.

김동률, 서동욱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며 늘어놓는 수다를 닮은 노래인데,

유쾌하고 가벼운 멜로디가 좋기도 했고,

그 곡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라, 어쩐지 아쉬운 마음으로 듣곤 했다.

마지막까지의 이어지는 흥얼거림이 참 좋았다.



난 네게 거짓말을 못하지 아닌 척을 해도 늘 들키지
옷 입는 것만 봐도 다른데 우린 아웅다웅 잘 지냈지
이렇게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 둘 다 많이 변할까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넷이 어디로 놀러 갈까
언젠가 우리 또한 아빠가 될까
난 사실 많이 걱정이 되지 멀리 헤어진 듯 외로울까
우리들 노래처럼 늘 서로의 마음에 남아서
문득 외로울 때 힘이 되지
(우리 그래도 음정은 맞춰야 되지 않겠니)
우리 (십 년 후) 우리 어떻게 달라질까
둘 다 서울에 살까
멀리 떨어지면 (가끔씩) 많이 보고 싶을 텐데
언제든 찾아와서 웃을 수 있길
난 가끔 우리 노랠 부르지 항상 든든하게 힘이 되지
그 노래들을 흥얼거릴 때 언제라도 우린 함께인걸
랄랄라...

_ 전람회 「우리」



아직 이십 대 초반이었을 두 사람이 생각한 '십 년 후'가 한참 지났다.

나도 이 노래를 듣던 시절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버렸다.


노랫말처럼 문득 외로울 때 힘이 되는 노래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노래와 함께 재생되는 추억과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이 노래를 듣던 시절에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을 나의 지금이, 아마도, 다행이다.


내일 출근길에 입김을 하아, 불면서 노래를 다시 들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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