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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Jan 17. 2022

호떡에 꿀이 어떻게 들어가나요

겨울이 되면 먹고 싶어지는 겨울 간식은 여러 개 있다.

호빵(팥), 붕어빵, 귤, 어묵, 군고구마.

하지만 제일 흔치 않아서 더 먹고 싶은 것은 '호떡'이다.

마가린 가득한 철판 위에서 꾹꾹 눌러 구운, 잘못 씹으면 혀가 데일 정도로 꿀이 삐죽 나오는 호떡.

포장되어 마트에서 파는 꿀호떡이나 중국 호떡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고칼로리의 매력이 이글이글한 호떡.

 

어제 아침부터 호떡이 먹고 싶어 허기진 배와 부푼 기대감, 그리고 오천 원과 함께 집을 나섰다.

당근 마켓 앱에서 이웃이 등록해 둔 겨울 간식 노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옆 동네에 호떡을 팔고 있다는 소식을 믿어보기로 했다. 

평소 다니던 번화가 대신 골목길을 지나 다다른 그곳엔 호떡 대신

문 닫은 지 오래된 붕어빵 카트만 놓여 있었다. 

혹시 시장에는 파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일요일의 시장은 꽤 스산했고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곳과 문 닫은 붕어빵 가게들만이 있었다.


결국 집 근처 회센터 앞 중국 호떡 파는 트럭으로 향했다.

중국 호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애초에 방문 후보로도 두지 않았는데,  

4킬로미터를 걷고 결국 집 앞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호떡이 이렇게 먹기 힘은 음식이었다니 문득 슬퍼졌다.    


집 앞 호떡 트럭은 청각장애를 가진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중국 호떡, 와플, 국화빵 세 가지.

두 분 다 듣고 말하지 못하셔서 주문하려면 메뉴를 직접 손으로 가리키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어 개수를 말씀드리면 된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 국화빵도 맛있어 보여서 중국 호떡 1개(2천 원) 국화빵 1 봉지(3천 원)를 부탁드리고,

주머니 속 오천 원을 드렸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도 국화빵을 주문했는데 이제 막 반죽 틀에 반죽이 들어가 꽤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면서 아저씨가 호떡을 굽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저씨는 동그랗고 얇은 반죽을 만들어 능숙한 솜씨로 반죽을 둥근 틀에 넣었고

계속 틀을 뒤집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바삭하고 얇은 호떡 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옆 사람들이 말과 손짓을 섞어 아저씨에게 물었다. 호떡 꿀은 언제 어떻게 들어가는 거냐고.

아저씨는 반죽 모양을 손으로 그리면서 꿀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행동으로 설명해주려고 하셨는데,

옆 사람들도, 나도 정확히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이 사람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오래 기다려야 하냐는 새로운 사람들의 질문에 기다리고 있던 우리가 대신 대답해주고,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호떡 트럭의 규칙인 '말 대신 동작으로 주문하기'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에게 인수인계된다.

 

국화빵이 드디어 예쁜 갈색으로 구워져 따뜻한 국화빵과 중국 호떡을 들고 집에 도착했다.

내가 왜 중국 호떡을 별로 안 좋아했던 걸까 후회할 만큼 고소하고, 달달하고 맛있었다.

정성스럽게 구워진 호떡은 파사삭 부서지며 경쾌한 식감을 만들어냈다.

마가린으로 구워낸 호떡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었다.

국화빵은 좀 급하게 구워진 듯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겨울의 단팥을 가득 품고 있었다.

겨울 간식은 그 간식이 불러들이는 추억도 맛의 일부다.


국화빵 열 개, 중국 호떡 한 개 겨울의 맛은 단돈 오천 원


결국 중국 호떡에 꿀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저씨는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행동만으로는 그게 어떤 과정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말로 설명해주었다고 해서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 옆에서 가만히 아저씨의 정성스러운 호떡 제조 과정을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아저씨만이 알고 있는 반죽의 점도, 기계를 뒤집는 타이밍 같은 건 백번 봐도 모를 거다.


말이란 정말 정확하고, 명확한 소통의 방법일까?

나는 말을 하면서 내 생각과 기분을 전달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들은 말로 옮겨지면서 또 달라지고, 듣는 사람에게서 또 달라진다.

우리는 말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듣고 이해하는 것은 처음 그 생각의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아저씨가 만든 호떡의 꿀은 어느 한 곳 쏠리지 않고 고르게 퍼져 있었고, 정말 맛있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말을 못 하는 분들이라는 걸 금세 깨닫고, 소통의 규칙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사람들의 마음 같은 건 말이나 글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따뜻하고 소중하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을 마주하면 답답해 질 때도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것들을 좀 더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말해도 닿지 않는 말들도 있다.

말로 이해시키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의미 있는 것들도 있다.

말을 너무 믿지 않고, 너무 말로 옮기려 하지 않고.

흘러가는 말과 멈춰있는 말 사이에 존재하지만,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지켜보고 싶은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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