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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Sep 07. 2021

뭉갈이의 역사

일요일 아침이면 엄마는 약수터에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파트 단지 뒤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는 약수터가 있었는데 커다란 플라스틱 병을 들고 가서 약수를 가득 담아오는 게 숙제였다. 나는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마지막까지 거부하다가 엄청난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동생은 다람쥐처럼 산을 뛰어다녔지만 나는 약수터로 가는 길이 너무도 싫었다. 사람은 왜 그리 많고,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약수병은 왜 이리 무겁고, 내려가는 길은 왜 이리 긴 것인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잔뜩 얼굴 구기고 있는 나를 보며 아빠는 내게 "뭉갈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움직이기 싫어하고 집에서 뭉개기만 하는 나를 놀리는 별명이었다. 아마 잠만자는 포켓몬 잠만보 같은 느낌이었을까.


고무줄놀이도 못해서 매번 친구들이 깍두기를 시켜줬다. 고무줄이 무릎 높이까지 걸려있을 때는 곧잘 했는데 허리 이상으로 올라가면 무리였다. 허리부터는 역동적인 점프 동작이 많았는데 난 아무리 애를 써도 다리가 고무줄에 닿지 않았다.

다리뻗기가 불가능했던 뭉갈이의 고무줄 놀이 (사진 김기찬)


-(점프하며 종아리를 고무줄에 올리며스텝 밟기) 시체를 넘고 넘어


에서 항상 실패해서 노래의 다음 가사처럼 앞으로 가본 적이 없다. (당연히 낙동강까지도 못 가봤다) 멋지게 점프를 하며 줄을 가지고 노는 친구들을 보며 ‘역시 난 몸 쓰는 건 못해’라는 확신을 굳혀나갔다.      


뭉갈이가 제일 싫어하는 수업은 당연하게도 "체육"이었다. 거의 모든 과목에서 백 점을 맞는 아이였지만, 체육 시간에는 늘 꼴찌였다. 줄넘기도, 훌라후프도 못했다. 달리기는 반에서 제일 느렸다. 늘 "수"로만 채워진 성적표가 당연했던 내게 처음으로 체육 과목에 "우"가 찍혀 있던 날 엉엉 울며 집에 갔다.(다소 잘난 맛에 사는 어린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체육 실기평가는 나에게 저주 같았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 왜 자꾸 하라고 하는지, 그걸 왜 점수 매기고, 평가하는지 고통스러웠다. 매번 최저점을 받아 평균 점수를 깎아 먹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체육은 곧 고통의 시간이었고, 체육 수업이 있는 날 내리는 비가 그렇게 반가웠다. 대학생이 되었을 땐 어른이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더 이상 체육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운동은 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몸을 사용하고, 운동신경이 필요한 모든 일을 피했다. 자전거 타기도, 운전도, 수영도, '당연히' 못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못 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내추럴 본 "뭉갈이" 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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