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가 싫었다. 아니, 달리기가 싫었다.
부채춤 연습도, 콩주머니 던지기도, 운동장 흙먼지 속에서 먹는 점심도 좋았지만, 달리기가 너무 싫었다.
운동회 달리기에선 각 반의 같은 번호끼리 시합을 했다. 다른 반 21번과 함께 긴장된 상태로 출발선에 서서 총소리를 듣고 달려 나가던 의무적 달리기. 1등부터 3등은 공책도 받고, 청군의 점수에도 보탬이 되지만 꼴찌는 결승선을 통과하면 잘못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매번 내 앞을 달려 나가는 친구들의 등만 보고 달려야 했고, 늦게 달려오는 나 때문에 선생님들이 억지로 결승선 리본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달리기 출발선 바로 옆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앉아 있었는데, 그 애에게 달리는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싫어 갑자기 배탈이라도 나길 바랬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또 꼴찌를 했다. 이어달리기 대표인 친구들의 달리는 모습은 멋졌지만 꼴찌의 달리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슬프고 우울한 것이었다.
체력장은 더욱 싫었다. 백과사전이 말하길 체력장은 <학생들의 기초체력 향상을 위하여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중·고등학생에 대한 체력검정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한다. 기초체력이 아예 없는 나 같은 학생들은 최저 기록을 남기는 과정이었다. 100m 달리기는 20초를 넘겼고 제자리멀리뛰기와 던지기는 팔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모래사장으로 나 자신과 공을 던지는 일이었으며, 철봉에 팔 굽혀 매달리기는 철봉을 잡자마자 뚝 떨어졌다. 윗몸일으키기는 평균 정도의 기록이었고, 오래 달리기는 완주했다는 게 자그마한 위안이었다. 오래 달리기를 하고 나면 쇠를 핥은 것 같은 피 맛이 돌곤 했는데, 체력장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친구들과 운동장 계단에 한참 드러누워 있곤 했다.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 출발선에 서야 하는 일은 괴롭다.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매번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달리기는 수학 올림피아드 같은 일이었다. 정답과 해설을 봐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달까. 기초체력, 근력, 순발력, 운동신경 모두 평균 이하인 나에게 운동회도 체력장 모두 ‘운동 못하는 나’를 확인해야 하는 우울한 시간이었다. 못하겠다고 도망치는 용기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선생님을 거역하는 법을 몰라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출발선에 서서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달리는 그 자체보다 꼴찌를 하는 게 싫었던 것 아닐까. 못하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보니 못하는 일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못하는 일도 잘할 수 있게 되고, 꼭 잘하는 게 아니더라도 괜찮은 순간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그 시절에 나에게 알려줄 수 있었더라면, 운동회도 체력장도 조금은 더 즐기는 어린이가 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