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여자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았던 엄마의 엄마
엄마는 경상도 여자이다. 억세고 씩씩하고 악착같던 8남매 중 맏이. 방학 때만 되면 한 달 정도 엄마 손에 이끌려 경상 일주를 했다. 대구, 마산, 부산, 울산, 진주를 찍고 마지막 할머니가 계시는 합천에 머물다 돌아오는 일정인데 이모들과 삼촌들의 거주지가 바뀔 때마다 우리의 노선도 바뀌었다. 그렇게 매해 경험했던 경상 일주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무궁화 호는 비싸고 새마을 호는 꿈도 못 꿨다. 우리가 탑승했던 비둘기 호는 8시간을 달려야만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내가 함께 앉아 가도 부족하지 않은 공간이었으니 오빠와 내가 얼마나 작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2인 좌석에 발 뻗고 누워도 다리가 닿지 않는 사이즈였고, 창가 아래 스틸로 된 틀 위에 오빠와 내가 번갈아 앉아 갈 만큼 얼라(‘어린아이’의 방언(경상, 평안, 함경))였다. 그 좁은 좌석에서 우리 셋은 공간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복작거리면서 키득키득 긴긴 여행을 시작했더랬다.
기차 안에서의 가는 일정은 기억이 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기억이 안나는 건 여행의 너무도 당연한 설렘 때문일까? 늘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지론으로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대던 엄마였지만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내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사실이 한 입 베어 물고 두 손에서 놓쳐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다시 줍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할머니 댁은 합천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신평이란 곳이었다. 합천 버스 정류장에서 신평으로 향하는 시골 버스를 갈아타면 읍내에서 한 짐 싣고 올라타는 어르신들이 있었고 도착해서 내리면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어둡고 깊은 저수지가 있었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올라가면 꼭대기에 할머니 집이 있었는데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가진 소 두 마리와 외양간 옆의 푸세식 회장실, 우물, 수돗가, 그리고 시골에 흔해 빠진 초가집이 있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완벽히 상반된다. 서울말 쓰는 할매와 사투리 쓰는 할매의 차이는 지역의 거리만큼이나 괴리감이 컸는데 외할머니의 억센 사투리에서 나오는 말투가 좋은 것을 좋다고 이야기하는 마음까지도 앗아가 버린 건 아니었나 끼워 맞추기 힘든 요소들을 억지로 쑤셔 넣어본다.
시골의 밤은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짙고, 묵직하면서도 그 안에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색이 존재했다. 적막한 한밤 중에 바느질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나는 구멍 난 양말을 기워 공을 만들고 있었다. 구멍 난 것들을 기워내다 보니 양말 공이 된 게 아닐까 어린애의 능력에서는 그게 더 현실적 이어 보인다. 그때 할머니는 내 시선에서 들여다볼 수 없는 천장 가까이에 있는 선반에서 바구니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바구니 안에는 늙은 호박과 검은 콩이 들어간 떡이 있었는데 나는 그 떡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무심한 듯 꺼내 주시는 그 바구니 속 떡이 할머니처럼 무심해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할머니는 우리가 온다고 미리 떡을 해놓으셨던 게 분명하다. 그때는 알지 못하고 수십 년이 흘러 두더지 게임에서 두더지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듯 찰나의 순간에 번쩍 알아채게 된 사실들.
할머니에게는 온화한 눈길도, 평화로운 음성도 없었다.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외할머니는 친절하지 않아 라며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려니 소 한 마리를 이끌고 논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소 발길에 치인 흙덩어리를 두고 나에게 장난치던 할매가 어긋나듯 떠오른다. 내가 경험한 경상도 여자는 억세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들 이면에 무심한 듯 숨어있던 다정함이 있지는 않았을까 이제와 그날 밤의 오물거리던 떡처럼 무심하게 끄집어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