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때가 되면 어린 나를 데리고 친할머니도 아닌, 외할머니도 아닌,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느 할머니 댁에 방문하곤 했다. 달랑 방 하나 있던 그곳은 대문이랄 것도 없었다. "어르신 계세요?" 한마디를 얹어 금세 부서질듯한 문을 열어젖히면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바깥에서 본 것보다 더 허름했고, 어두웠으며, 비좁았다. 반듯하지 않은 벽과 바닥, 무엇보다 편히 콧구멍으로 숨 쉴 수 없었던 복잡한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긋나 보이는 방 한구석에는 이부자리에 고정된 듯 앉아계시는 어르신이 있었다.
엄마와 어르신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보다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 때문에 고역의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그 공간에서 언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숨을 참아가며 방 안을 훑어보기만 했다.
"아이고, 이렇게나 컸어."
어르신은 나를 알은체 하지만 나는 그 노인네를 몰랐다. 쭈뼛쭈뼛 인사를 하지만 어르신의 반가움을 받아내기엔 내게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여러 번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엄마는 나를 데리고 그 어르신 댁을 몇 번 더 방문했다. 그때마다 나는 불편한 숨을 들이마셔야 했고, 그때마다 어르신은 내게 용돈을 쥐어주셨다. 엄마는 한사코 말렸다. 주려는 자와 받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서 나는 그야말로 불편하기 그지없는 순간을 겪었다. 기어코 내 주머니로 찔러 넣어주시는 돈을 어린 내가 거부할 힘은 없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자 더는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 어려서 알아듣지 못한 어르신에 대한 엄마의 설명을 세월이 흘러 알아차리게 되었는데, 그분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부모님이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었다. 엄마는 때가 되면 나를 이끌고 집주인의 방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허름한 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곳에서 불편한 숨으로 들이마셨던 퀴퀴한 냄새는 통풍이 되지 않아 정체되어 있던 공기와 세월이 다해 죽을 날을 기다리는 고목 같은 어르신, 그리고 볕마저도 들이치지 않는 정지된 시간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코를 찌를 듯한 퀴퀴한 그 방의 냄새가 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이제와 뜬금없이 3인칭 시점에서 기억이 되살아난다. 젊은 새댁의 시선과 노인네의 낡은 시선으로 여러 날 한 공간에서 함께했던 젊은 인생들을 들춰본다. 그때의 어르신도 없고 퀴퀴한 그 집도 허물어져 모든 것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공간이 지니고 있던 어두운 냄새, 그리고 어르신과 엄마 사이에 머물러 있던 정, 이것만큼은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