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치매였다

서서히 갉아먹힌 엄마의 마지막 장

by j 줴이

엄마는 내가 20대 초반일 때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노인성 치매라고 말하기엔 엄마는 국가에서 노인으로 분류되지 않아 지하철 무임승차도 안 되는 나이였다. 엄마의 삶이 만 59세에 마감되었으니 인생의 또 다른 막을 시작할 시기에 마지막 장을 치매와 함께한 셈이다. 가족 모두가 엄마의 뇌를 갉아먹고 있는 치매와 근 10년을 함께했다.


엄마는 일반적인 알츠하이머와는 달랐다. 가장 먼저 퇴화하기 시작한 것은 엄마의 전두엽이었다. 신촌의 S병원에서 한쪽 고막을 드러내는 중이염 수술을 받은 이후 엄마의 언어영역은 절망적인 상태였다.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어머니를 앞에 두고 정신병원에나 가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증상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던 나는 환자를 함부로 대하는 담당의사에게 한 소리 할 만한 정신머리도 없었다. 내가 22살쯤의 일이다.

우리는 무지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 대처할 정신머리도 없었다. 아빠는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지점이 존폐 위기여서 매일을 모든 직원과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지 모른 채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했다.

엄마는 시골에 계신 자신의 어머니와 타지에 있는 동생들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늘 손에 쥐고는 특정한 행동을 반복했다. 8남매 중 첫째인 엄마는 자신의 뇌가 갉아먹히고 있는 와중에 자신이 돌봐야 할 동생들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과연 죽음의 문턱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엇을 움켜쥐게 될까. 현재의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함부로 지껄이고 있지만, 삶에 미련 따위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정작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온 정신을 바칠 수 있을까,

사춘기 이후로 부모를 원망하고 또 증오하며 살아왔다. 그런 대상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삶이 뭐 이따윈가 싶게도 절망의 연속이었다. 가장 찬란해야 할 내 20대가 송두리째 짓밟혔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실종되어 가족 모두가 반 송장인 상태였을 때는 눈 뜨고 숨 쉬는 일조차 버거웠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일들을 상상하며 엄마를 찾아다녔다. 살아있는 게 그렇게도 버거운 일인지 알지 못했기에 살아온 지난날들이 참으로 덧없게 느껴졌다. 원망과 염원 사이에서 그 간극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서히 갉아 먹히는 누군가의 삶 앞에서 남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삶의 끄나풀은 이미 너덜너덜거릴 뿐이고, 어쩌면 숨 쉬는 기능이 소멸되지 않은 것을 기적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어떤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그저 나약할 뿐이다. 소멸하고 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만큼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소멸했다.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인생과 엮인 수많은 시간들은 엄마의 소멸과 함께 허무하게 증발되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삶이 그 지경이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몇 그람도 되지 않을 한 줌의 재, 그 마지막 삶의 무게는 종착지로 향하기까지 60년도 채우지 못한 시간과 비교할 수 없어 헛헛할 뿐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라져 간 엄마의 시간을 지켜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련 없이 현재의 시간을 살아내는 일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