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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Aug 19. 2020

하나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인생


그녀의 이름은 하나이다. 이름 옆에 님을 갖다 붙이면 하나님.

우리는 원장과 직원의 관계로 만났다. 처음 만나 대면하게 된 그녀의 이력서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력서 학력란에 적힌 그녀의 사연을 묻지 않았다. 그 안에 어떤 시간들이 담겨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저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살아온 용기 있는 그녀에게 박수 쳐주고 싶었다.

단 한 줄의 기록에 숨어있는 그녀의 삶이 얼마나 많은 역경을 포함하고 있을지 감히 미루어 짐작했다. 자의에 의한 인생이건 타의에 의한 인생이건 타자로서 감히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용기가 없어 결단 내리지 못해 뛰쳐나오지 못한 과거의 나 자신이 떠올라 그 한 줄에 포함되어 있는 타인의 인생이 먹먹했을 뿐이다.

하나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의 나는 공동투자자가 싸질러 놓은 부스러기들을 주워 담느라 버거운 시간이었고, 그 틈에 같은 공간에서 살아남게 된 그녀 또한 마냥 평화로운 시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며 미세먼지로 가득한 건조한 계절과 뜨겁게 정수리를 달구던 여름을 포함해, 꽁꽁 싸맨 출퇴근길의 겨울 등 여러 번의 계절을 함께 마주했다.

언젠가 조금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 데스크에 앉아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무심히 내뱉어주던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내가 함부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서 이겨냈어야 할 이 삶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거대한 이 우주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을지, 고작 그날 밤 집으로 가는 운전하는 길 내내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며 먹먹해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언젠가 그녀 혼자 근무 중이던 명절 연휴 기간 나는 집안일을 처리하고 서둘러 출근했던 적이 있었다. 모두가 쉬고 있을 연휴 기간에 쓸쓸히 혼자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출근하는 길의 내 마음이 조금 조급했던 것도 같다. 서둘러 갔고 도착 후 열린 자동문 사이로 울리던 센서 멜로디, 뒤이어 자신의 방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치던 음성.

"원장님?"

평등한 관계를 원해 모든 직원을 객체로써 바라보려 노력했으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직함 때문에라도 상하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까워지기엔 먼 당신. 실제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나를 깍듯이 대했다. 묵묵히 살아온 그녀의 인생을 앞에 두고 고용인과 인생 선배로서 존대받기엔 내 인생은 어린애 투정 같았다.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지내길. 각자의 사연을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제에 얽매이는 일 아니고 내일의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어떻게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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