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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Aug 19. 2020

K

미워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너와 나의 시간

Incognito를 알게 된 건 온전히 그녀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도) 지휘법 시간에 만나지 않았을까. 온갖 방황과 염세주의로 가득한 채 매일이 겉도는 시간들이었던 20대의 나는 클래식 전공자였지만 내 귀엔 늘 Nirvana와 같은, 전공과 이질적인 음악들로 가득했다. 아웃사이더로 보였을 법한 내게 그녀는 먼저 말을 걸어왔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작곡 전공이었고 드럼 연주가 주특기였으며 그녀 덕분에 홍대 라이브클럽에 발을 들이게 됨으로써 우리는 본격적으로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가 잘 가던 이대 앞 버거킹 지하 라디오가든에서 시나위 공연이 있던 날, 고막이 터질듯한 앞자리 스피커 앞에서도 졸고 있던 나는 패기 넘치던 20대였다. 작년 JJIF 마지막 날 시나위의 신대철을 향해 "신대철 죽지 마~"라고 외친 내게 그는 우리들 20대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신념을 잃지 않고 여전히 음악 하는 멋쟁이다. 십수 년이 흘러 그 당시 해당 클럽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일했다던 H를 만나게 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서로 어디선가 만나기도 하고 아니 만나기도 하는 일들을 생각하게 된 적이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따위를 생각했을 때 서로가 서로를 비껴갔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라는 개똥철학 따위의 생각들. 그 당시 뻔질나게 드나들던 홍대 프리버드 또한 J감독의 바운더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묘한 감정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프리버드라니.

이대 후문에 있던 빵이라는 클럽은 K의 선배 공연 때문에 알게 된 곳이다. 홍대 어느 카페의 차분한 여사장 목소리에 이끌려 재방문하게 된 j(글쓴이) 변태 썰은 이대 후문에 있던 클럽 빵이 홍대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듣고 근 10년 만에 방문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 여사장 카페는 홍대로 이전한 클럽 빵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 선배의 공연 이후 사이키델릭이 주 무기인 클럽 빵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홍대로 이전한 이후 어른(?)이 되어 방문했더니 아가들이 공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서 나의 꼰대 영역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인디와 락, 애시드 재즈를 포함한 전반적인 음악을 공유하며 20대를 보냈다.




전문 기술(?)을 구사하는 전공 특성상 타전공자의 기술에 대한 동경이 일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녀는 내 손가락을 늘 자랑스러워했고 과대평가당하는 나는 그녀 덕에 자만심이 하늘의 똥꼬를 찌르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관계는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일 수 없다. 그녀가 날 좋아하는 것만큼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겸손하지 않은 그녀의 자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그녀의 어떠한 행태로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그날 운동하는 중에 K를 생각하다가 누운 상태로 아령을 눈 위로 떨어뜨리는 일이 있었다. 무려 2kg. 급하게 병원으로 갔고 결과적으로 별 일은 안 일어났지만 사건 이후로 그녀를 더 미워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최근 10여 년 만에 통화하게 되었고 변함없는 서로의 목소리에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그러면서 목소리는 지문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그녀가 했다. 10여 년의 시간은 그간의 안부를 요약할 수 있을 만큼 짧은 세월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부족하게나마 그간의 일들을 주고받았고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환했다. 그녀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 간 일이 있었는데 아령을 눈 위로 떨어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나를 왜 불렀냐며 그녀에게 짜증을 내더니 쿠키를 주고 갔다는 말을 했다. 이 모든 것을 나 또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은 3개월 입원해 있을 만큼 큰 사고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때의 심각성을 몰랐던 건 그녀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웃으며 그녀가 말하길, 짜증 내면서 쿠키는 왜 주고 갔냐며, 너 진짜 이상해 ㅋㅋㅋ 라며. 그녀는 아직 모른다. 내 눈두덩이 위로 떨어뜨린 2kg짜리 아령을. 그 사건의 전말이 자신이라는 것을.

언젠가 그녀를 차에 싣고(몸뚱이 거대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던 귀갓길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나오던 음악과 백미러로 비추 작렬하던 태양은 잊을 수 없는 절정의 공감각에 관한 기억이다. 그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그 장면이 자동으로 소환되며 설명하기 어려운 나만 알고 있는 감정이 개입된다. 물론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미래를 예단하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온갖 공감각을 놓치지 않던 황홀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치열했고 한없이 우울했고 끊임없이 방황하느라 바빴던 각자의 20대를 보내고 그녀는 갑자기 자기 길을 찾았다며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결국 나 또한 전공과 무관한 대학원에 갔으니 우리들 방황의 끝은 어디인가요.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도 지체 없이 흥분하고 낄낄대던 우리들의 20대를 소환하며 눈물 찔끔 흘릴 수 있을 법한 시간의 연결고리는 우리가 함께 들은 음악과, 함께 들썩였던 그루브와, 함께 한 공간에서 우연히 백미러로 보게 된 노을 같은 것들이다. 그중에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아마도 '과거와 타인은 변하지 않는다'일 것이다.

Incognito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K를 생각한다.

그녀는 나를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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