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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Dec 14. 2020

탁송기사의 경제 수명

어쩌면 절박한 그의 생계 수단

 얼마 전 자동차 리콜 수리로 서비스센터에 차를 입고시킨 이후 두 달 만이다. 9년 차에 돌입하는 자동차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지 최근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일이 발생했고, 동네 카센터에서는 원인을 잡지 못해 공식 서비스센터에 정밀진단을 의뢰한 상태였다. 서비스센터의 위치가 IC 부근이라 입고 후 대중교통으로 되돌아오기 어려운 장소였기에 탁송 서비스를 요청했다. 탁송기사는 차주가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와 차주 대신 센터에 자동차를 입고시키고, 수리 혹은 진단이 끝나면 다시 탁송기사가 자동차를 가지고 차주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된다.

 자동차와 마누라는 빌려주는 게 아니라는 우스갯소리와 무관하게 자동차를 남에게 맡기는 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리기사를 이용하는 일이 극히 드물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 대리기사가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괜히 애처로워 마음이 불편했던 탓도 다. 대리기사 시스템이 다인 1조로 움직이는 경우나 도심에서 도심으로 귀가하는 경우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서비스센터로 입고하기 위해 탁송기사와 약속한 시간은 오전 8시 30분 무렵. 해 뜨는 시각이 늦은 이 겨울에 얼얼한 아침 댓바람부터 대중교통으로 움직였을 기사 분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쓰인다. 그들이 마땅히 일하는 방식이니 측은히 여길 것은 없음에도 이 감정은 어디서 비롯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탁송기사가 할 일은 이러하다. 약속한 장소도착하면 차주에게 전화해 도착을 알리고 곧이어 차주 만난다. 탁송 중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하고자 자동차 외관 상태를 파악내용을 기록하고 자동차를 인수한다. 서비스센터로 차를 이동시킨 후 자동차 외관 사진을 찍어 차주에게 전송하고, 마지막으로 센터에 입고하는 수순이다.

 탁송기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오전 8시 40분경. 내 예민한 성향은 늘 약속시간을 전후로 미미한 불안을 감지하며 상대를 기다리곤 한다. 오늘이 가기 전에는 오겠지, 라는 마음으로 태평하게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 죽기 전에 생길 일은 없겠지만 이런 예민한 상태가 가끔은 죽도록 불편하다. 편하게 좀 살고 싶단 말이지. 곧 도착한다는 탁송기사의 전화를 받고 바로 튀어나가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블랙박스를 켠다. 시트 예열 버튼을 누른다. 남자들은 뜨거운 궁둥이를 대체적으로 안 좋아하니 1단계로 조절한다. 기록된 이동거리를 리셋한다. 차에서 내려 탁송기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탁송기사는 아직 안 보인다. 두리번거린다. 없다. 전화기를 꺼내 최근 기록에서 맨 위에 보이는 낯선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기를 기다리는 사이 저만치에서 기사가 뛰어오는 것을 알아챈다.



 나의 운전 성향은 내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주변에서 보고 경험한 것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까. 아버지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었다. 꼼꼼하고 깔끔하고 완벽하고 능수능란하다. 오빠는 그런 아빠의 성향을 91% 닮았다. 나는 92%쯤 닮았나? 말하고 보니 자랑질이네. 아버지는 운전도 잘하셨는데 나이 들어 활동량이 줄고 감각이 더뎌져서인지 언젠가 아버지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집 앞에 주차하는 과정에서 앞 범퍼를 담벼락에 아무렇지 않은 듯 짓이기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다. 나이 들면 감각이 무뎌져서 노인들의 운전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인정했던 베스트 드라이버 아버지도 나이 들어 그 감각이 퇴보한 것이다.

 영하 15도의 눈 길을 헤치고 저만치에서 엉거주춤 뛰어오는 기사의 흰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내 앞에 도달했을 때 그의 마르디 마른 몸뚱이와 주름진 얼굴을 확인했. 대략 70은 넘어 보이는 나이. 어이쿠야 어르신. 이때부터 여러 감정이 섞여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마른 길도 아니고 눈이 온 뒤의 영하 기온에 매가리 없어 보이는 저 몸뚱이로 무사히 이동이나 할 수 있을까. 차에 오르기 전, 사전 처리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굼뜨다. 그가 떠나고 나면 나는 그를 기다리던 때 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그의 도착 문자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괜히 마음이 애잔해서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할라 타이어에 체인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 조심하시라 당부에 또 당부를 얹다. 그가 차를 돌려 나갈 때까지 차고의 문을 닫지 맨발 사이로 영하의 기온이 스며든 채로 얼음처럼 기다린다. 선팅 되어 있는 자동차 문 안쪽으로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나는 괜히 도어맨처럼 차가 내 앞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손히 인사까지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는 자신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탁송기사의 나이 제한과 그들의 경제 수명 사이에서 아까보다 더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제의 체기가 빈 속에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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