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취향을 구걸하는 일 따위는 없다
"OOO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는 내게 일말의 안식처 같은 사람이었다.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쿨함, 그리고 가끔 적당함을 넘어선 지식수준까지,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분명했지만 누가 봐도 동네 오빠에서 동네 아저씨로 전락해버린 못다 핀 꽃 한 송이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다 친오빠의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인 것을 알고부터는 고향사람 마냥 뭔가 더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음악을 그도 알고 있었을 때, 나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그 음악을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그제야 제대로 숨을 좀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친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침묵의 시간과 무관하게 언제라도 흔쾌히 타인을 맞이해주는 사람, 이를테면 재개발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진 옛 건물들 사이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 문방구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 한 문장은 그간 우리의 간격과 지내온 시간을 싸늘하게 감도는, 한겨울 외창에 들러붙은 성에 같은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손발이 얼어붙어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듯한 한겨울에 칼로 에이는 듯 싸대기를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으로 싸늘한 그의 문장은 모든 걸 얼려버렸다. 그렇게 타인의 취향이 되어버린 개인의 취향.
궁도에서 활을 쏠 때 자칫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당겨진 활시위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때가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한 이유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이내 자세를 바로 잡지만 얼얼해진 뺨은 더 용기를 내지 못한다. 붉으스레 달아오른 뺨을 부여잡고는 세상의 모든 의기소침을 짊어진 채 활을 내려놓게 된다.
그렇게 성의 없는 한 문장으로 싸늘하게 후려 맞은 뒤 내 안식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숨 막히는 세계로 다시 돌아와 불규칙하게 간간히 쌕쌕거리는 숨이 불편해도 얼어붙은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자라섬에서 공연이 있는데 갈 생각 있어요?"
"자라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통에 굶주린 길 잃은 개였을지언정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정을 구걸하는 일은 없다. 어쩌면 개인의 취향을 지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에게서 개인의 취향을 구걸하는 일 따위 정말이지 개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