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말려주던 아빠
꼼꼼하고 서두르지 않는 아빠의 섬세한 손길
엄마 무릎에 뉘인 채 욕실에서 머리 감기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어렸고 대부분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때였으리라.
언젠가 특별할 것 없던 평일의 저녁은 몸을 씻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나른하고도 평온한 날이었다. 욕실에서 엄마의 무릎에 뉘인 채 내 머리카락이 감기고 있었고 목욕재계가 끝난 뒤 엄마는 나를 욕실 밖으로 내보내며 아빠에게 나를 부탁했다.
늘 엄마의 손길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시원한 화장품 스킨 냄새가 섞인 아빠의 단단하고도 꼼꼼한 손길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느꼈다. 머리 말려주는 아빠의 섬세한 손길은 엄마와 다른 분명한 신세계였다. 그저 늘 익숙해져 있던 것에서 벗어나 경험하게 된 새로움이라기엔 아빠는 꼼꼼했고, 서두르지 않았으며, 엄마와는 다른 섬세함이 있었다. 그때 수건 사이로 느껴지던 아빠의 다정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엄마보다 아빠가 머리 말려주는 게 더 좋다고 말하지 못했고, 그때 경험한 아빠의 손길은 어쩌다 한번 겪은 이벤트일 뿐이었다. 두 번 다시 아빠의 손길에 내 머리카락이 말려지는 일은 없었다.
얌전히 머리통을 들이밀고 앉아있던 어린 내가 당신의 머리 말리는 기술에 흡족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촉각의 기억을 꾸준히 품 안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대체적으로 꼼꼼하고 섬세한 이유는 그때 아빠에게서 느낀 촉각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