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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Aug 11. 2020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다

Track 9 / 이소라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나 날 만났"다. 초등 3년쯤인가 문득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면서 존재에 관해 알게 됐는지 모른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내던져진 이 세상은 목젖의 근육을 컨트롤하지 못해 사탕이 목에 넘어갈까 두렵기 시작하면서 소유에 대한 갈망, 하기 싫은 것에 대한 저항과 함께 키가 자랐고 몸무게가 늘었다.

다리 길이가 짧아 그랬는지 자꾸 푸세식 화장실에 빠지는 일도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멀쩡한 다리로 자꾸 길바닥에 넘어질 때도 네가 넘어지는 건 운명이라며 옆에서 지껄이던 친구의 말과 함께 20년 이상 넘어져본 후에야 나는 평발인가 그제야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니까.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내 몸을 맡기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 모든 절망을 거부하면서도 인생은 운명이라며 어쩔 도리없이 그대로 껴안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 계절의 여름이 시작되는지, 언제까지가 이 여름의 끝인지 알 수 없듯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내 사유가 함께 자랐다. 그렇게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개척이 맞다면서 껴안았던 모든 불행을 내던졌고 입에 문 사탕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애써 목젖에 힘을 줬다.

알지도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나서, 알지도 못할 세상을 경험하고, 알지도 못할 지식을 축적하고, 알지도 못할 미래를 기대한다. 세상과의 대면은 내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가고 멈추고" "매일 독하게" 또 "고독하게" 날 "다그쳐 살아"간다.


Track9 /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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