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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Jan 20. 2021

온도의 결핍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무지개색 계이름

고사리 손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뚱땅거릴 때 내 발은 바닥에 닿지 않아 공중에서 흔들거렸다. 피아노의 흰색 건반을 무지개 색으로 기억했지만 노란색의 '레'를 따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정하지 않은 선생 때문에 눈물이 또르르 흘렀을 땐 왜 그러냐는 눈치 없는 그녀에게 배가 아프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날의 거짓말 때문에 피아노를 치다 말고 집에 일찍 와서는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배우기 시작한 유치원 친구들은 자신보다 진도가 빠른 나에게 새침하게 굴었고, 그러면서도 친구들의 엄마들은 심부름으로 불려 간 그 집에 나를 붙잡아놓고 피아노를  요구했다.

키가 조금 자라 엉덩이를 앞으로 빼 의자에 걸터앉게 되었을  발이 바닥에 닿아 페달을 밟을 수 있었고, 왼손과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따로 놀아 오른발이 합세하며 세 박자가 함께 했다. 그리고 이제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동네 아줌마는 건반 위에서의 양손과 페달 위의 발이 따로 노는 광경을 보더니 마냥 놀라워했다. 이게 그렇게 어려울 일인가. 어른들은 가끔 바보 같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그때 무지개 색으로 이름 붙여진 흰색 건반 위에서 뚱땅거리던 내 손가락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좀 더 다정하게 어루만져야 한다고 누군가 다정하게 말해줬더라면 노란색 '레'음의 따뜻함을 알 수 있었을까? 어루만지지 못한 가여운 시간들. 방방 뛰다 돌에 걸려 넘어졌어도, 아무도 내 무릎을 가여워해 주는 이 없었어도, '레'의 따뜻함을 알았더라면 다 괜찮았을 텐데. 아무도 그 따뜻함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 나는 따뜻하지 못했다.


건반 위의 무지개는 왜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라 '빨노초파검주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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