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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Mar 28. 2021

꿈에 등장하는 엄마의 두 가지 모습

서로의 동공을 마주할 수 없어 사무치기는 마찬가지

꿈에 등장하는 엄마는 두 종류이다. 건강한 엄마, 아니면 아픈 엄마. 꿈에서 만나는 엄마는 건강한 모습이어도, 아픈 모습이어도 사무치긴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래도 아픈 엄마를 만나고 나면 그게 꿈이라 해도, 아니 어쩌면 꿈이라서 더 하염없이 사무친다. 깨고 나서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땐 더욱이. 치매로 영혼이 갉아 먹힌 꿈속의 엄마는 아마 우리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벽 안에 갇힌 듯한 고통을 수반하며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그래서 건강한 엄마를 만났을 땐 대화할 수 있어 그게 너무 좋아 사무치고, 아픈 엄마를 만났을 땐 그게 불가능해 또 사무치는 것이다.

사라진 엄마의 영혼은 육체의 바깥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래서 내가 느낀 답답함을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대화할 수 없었던 지난 시간들이 꿈에까지 나타나 재현되는 것은 꿈속의 엄마를 바라보는 내 영혼까지 갉아먹는 일이다. 엄마와 아빠에 대한 여운이 다른 것은 아마 서로의  마지막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동공을 마주했던 아빠의 마지막 순간은 거듭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엄마는 뭘 얘기해주고 싶은 걸까. 마지막 눈동자를 함께하지 못한 순간을 만회해보려 자꾸 꿈에 등장하는 걸까. 꿈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한다. 그러니 꿈속에 등장하는 아픈 엄마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결론 나지 않는다. 같은 사무침이어도 나는 아픈 엄마 말고 건강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와 나누지 못한 마지막 대화, 그리고 마지막 눈동자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하지 나알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정지된 시간의 슬픔은 결코 상쇄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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