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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Jan 30. 2021

문화인

미술관으로 간 노인네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나쁜 행동일까 아닐까. 물론 학교에선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리라 가르친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나쁜 어린이였고,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어린이였다. 배운 대로 살아온 인간의 도덕적 기준은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아시아 최대 페스티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모 뮤직 페스티벌 마지막 날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던 나는 폐막식이 끝난 후 난장판인 객석에서 관람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주섬주섬 손 닿는 대로 줍고 있었다. 무의식적이거나 의식적이거나, 어쩌면 습관적인 행위였고, 공연 관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레기를 줍지 말란다. 이 난장판을 모른 척하라고? 내가 쓰레기를 주우면 다음 날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할 일이 없단다. 아.. 나는 누군가의 일 할 권리를 빼앗고 있었던 것인가. 흔히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유럽의 어느 길거리에서는 과할 정도로 쓰레기가 나뒹군다. 시민들의 의식은 다음과 같다.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면 환경 미화원의 일거리를 뺏는 것이다. 아.. 이런 신박한 사고방식이라니.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은 과연 도덕적이긴 한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비매너 충들을 비난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한파가 휘몰아쳤지만 쨍한 겨울 볕이 있어 오래간만에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한 예약 시스템이었으므로 뭔가 특별히 초대받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좁은 미술관 출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미어터진 덕에 적잖이 어리둥절했음은 물론이고, 평균 연령 칠순인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연신 떠들어대느라 전시 공간의 공기마저 축내고 있어 호흡곤란 일보 직전이었다. 미술관에서 떠드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는가? 물론 아니지. 제 귀가 쏘머즈라 유감입니다.

그들의 감성 호르몬은 죽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던 관람객의 성별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여자가 나이 들면 누가 무뎌진다 했던가. 연신 복식 호흡으로 감탄사를 내뱉으시는 여사님들은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문화인일 뿐이다. 그리고 작품을 휴대폰으로 저장할 줄 아는 스마트한 노인네들이다. 쉴 새 없이 찍어대느라 끊임없이 찰칵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볼륨이 최대치로 끌어올려진 휴대폰 찰칵 소리가 단순 소음으로 신경을 곤두세운 건 유독 내 청각이 젊어서였으리라. 어쩜 한 작품도 빼놓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던 그 여사님의 휴대폰 저장공간은 안녕하실까?

복도에서 뛰지 마라,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마라, 친구와 싸우지 마라, 하지 마라, 다 하지 마라. 규칙을 지키는 일은 사회를 위한 일인가, 사회의 구성원을 위한 일인가. 미술관에 온 노인네들은 시끄러웠다. 경험한 게 많아서 아는 체하고 싶을 테고, 오늘의 경험을 또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테고, 그래서 사진도 찍어야겠고, 그러니 이해해보려고요.

한 줄 감상평 : 미술관에 온 노인네들 넘나 시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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