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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Feb 10. 2021

낮술의 묘미

모두가 밤의 시간을 향유할 때 낮의 시간을 향유하는 것

 인생 처음 술맛을 본 건 어린 시절 동네 근처에서 열리던 야시장에서다. 꽤 큰 규모로 열리던 야시장은 공연도 하고 여러 음식들도 팔았는데 아빠 손을 붙잡고 경험한 휘황찬란한 낯선 세계는 모든 것이 내 시선보다 위에 있는 바람에 목 뒤가 뻣뻣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빠 지인과 함께 자리 잡았던 테이블 위에는 투명한 어른들의 술잔이 놓여 있었다. 멀뚱멀뚱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낯선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빠는 한번 마셔볼래? 하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투명한 술잔에 들어있는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임을 알았기에 감히 경험해선 안 되는 것임을 직감했지만 새로운 세계는 늘 눈앞에서 호기심의 회오리를 치기 마련이다. 젓가락을 이용해 투명한 그것을 찍어 내 혀에 가져가기에 이르렀다. 아뿔싸. 아빠는 이미 내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 인생이 내 혀에 닿은 그것과 같은 맛이라는 것을. 도대체 어른들은 혀의 즐거움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저것을 왜 마셔대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이 더해졌다. 그리고 나는 중딩의 세계에서 생애 두 번째 알코올을 접하게 된다.

 신체와 정신은 이미 다 자란 것 같은데 당최 하지 말라는 건 왜 이리 많은지 성인만 돼 봐라 하며 벼르던 시절이었다. 하지 말라니 더 궁금해져 버린 탐닉에 대한 시도는 온전히 우연과 즉흥에 의해서였다. 친구와 동네 호프집 앞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짰다. 누가 봐도 중딩인게 티 나는 우리를 과연 받아줄까? 근데 고딩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받아주지 않을 경우의 대처법을 우선 생각하며 그 누구도 감히 때려잡지 못한다는 마의 여중딩 둘은 수줍은 듯, 아닌 듯, 살금살금 호프집 안으로 입장하게 된다. 들어가기 앞서 머리 굴던 온갖 시나리오가 무색하게 우리는 너무 손쉽게 착석하게 되었는데(사실 들어가고 보니 알바생은 학교 선배였고 아마도 우리가 입장 가능했던 건 학연 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때 호기롭게 주문한 맥주는 기대와 달리 맛이 없어 실망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어른들은 이 맛없는 것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건지 알 수 없 중딩의 세계에 이어 고딩의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세상을 향한 분노는 더 날카로워졌고 그 객기는 더 강력해졌다. 친구들 중 생일이 있는 날이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슬그머니 빠져나와 치킨집에서 맥주가 없는 닭을 뜯으며 앞으로 예상할 수 없는 우리들의 비관적 인생을 치킨집 테이블 위에 올려놓곤 했다. 고딩시절의 지독한 염세주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매일이 지옥이었고 내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때는 개교기념일, 우연히 친구의 친구들과 함께 대낮부터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때 마신 낮술의 기억이 내게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당시 친구의 친구의 오빠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그 친구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함께 위로하게 었는데 그때 테이블 위에 술이 함께 놓여 있었다. 고주망태가 된 친구를 붙들고 모두가 밖으로 나왔을 땐 아직 시벌건 대낮이었고, 취기가 돌고 있는 내 정신머리에는 길바닥 위의 모든 사람들이 빙글 뱅글 돌고 있었다. 하, 이것 참 미묘하네.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낮술의 묘미를.

 20대에 국내 여류 작가들의 책을 통해 어른들의 불륜과 그 너머의 세상을 알게 되었고, 공지영인지 신경숙인지 은희경인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글에서 낮술의 묘미에 대한 문장을 마주한 일이 있다. 그때 스치듯 내 생애 첫 낮술의 기억이 미묘하게 떠오르면서 낮술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했다. 모두가 멀쩡한데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미묘함,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특별함 같은 것들이 모두가 밤의 시간을 향유할 때 낮의 시간을 향유하려 드는 낮술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고딩 때 경험한 낮술의 묘미를 성인이 되어 다시 느 일은 없었지만 언젠가 다른 세상에 있고 싶을 때 낮술을 꺼내 들지 않을까 생각다. 어차피 다른 세상에 가 닿을 수 없으니 모두가 술의 힘을 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단 한 번도 필름 끊긴 적 없는 나의 주력 덕분에 얼마나 마셔야 다른 세상을 경험할는지는 모르지만, 술 마실 일 없던 최근 몇 년의 시간을 보상하듯 현재 내 주력은 상상 그 이상을 뿜어내고 있다.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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