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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Apr 10. 2021

기억과 망각 사이

신이 주신 선물과 저주 사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는 것들은 대체적으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본인으로서 내게 기억은 선물이면서도 저주이다. 너무도 상세한 기억들은 붙잡을 수 없는 과거를 선명하게 소환하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억들이 빛에 바래지 않고 선명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도 자체적으로 망각을 머릿속에 주입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매일 줄다리기한다.

어느 날엔 누군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내 기억을 붙잡고, 어느 날엔 누군가의 다정한 음성이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어느 날엔 누군가의 따스한 온기가 그날의 감정을 붙잡는다.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라 기억 안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는 것이다. 만평의 하늘과 바다를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것들은 분명 다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오늘도 괴로운 시간들을 보낸다. 망각하고 싶지만 소중한 기억이라 감히 뒤돌아서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 때문에 괴롭지만 오히려 나는 망각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냄비 안에 들어있던 군고구마와 그 안에 피어있던 곰팡이는 누군가의 무기력과 상실에 대한 기억을 함께한다. 망각하고 싶지만 망각이 두려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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