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상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사는 것이라면

PASO - 2막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2년째 동거 중이던 그녀는 불안해했다. 둘 다 풋사랑을 할 만큼 어리지도 않았고, 2년 살았으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서로의 머릿속에 굴러다녔을 거다.


"회사 그만두기 전에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그만두는 게 어때?"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쓸데없이 모험심 강한 나에게 이 말은 부담이었다. 그때 아마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3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는데, 한 달만이라도 쉬고 싶어.."


압박감을 덜 받기 위해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나는 회피했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돼버렸다.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헤어졌다.


꽤 괜찮은 회사에서 퇴사했고, 미래는 또 불안해졌고,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했다.

3연타석 만루홈런 맞은 투수가 무릎 꿇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살아온 시간이 쌓여가면서 정말 무서운 점은, 감정들이 더욱 짙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슬픔이라는 감정이 그렇다.


상처나 슬픔들을 제 때 날려주지 못하고 겹겹이 잔재로 쌓아두면... 그 후의 쓰라림은 몇 배가 된다.


'산전수전 공중전 빼고는 다 겪었는데 뭘..' 그렇게 생각하던 내 앞에 공중전이 시작된 거다. 오만했던 나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실 바닥에 떨어진 게 처음은 아니었다.

문제는 다시 올라갈 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예전엔 분노와 오기가 있었다. 이왕 태어난 거 끝을 보자는 오기나 패기 같은 것.

하지만 이 번에는 달랐다. 5년간의 전쟁 같은 서울생활로 인해 내 정서는 번 아웃 상태였다.

분노와 오기를 방패 삼아 절벽을 다시 기어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싫었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죽기 살기로 경쟁해서 그 끝에 기다리는 보상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사는 것이라면?'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그 이상을 원했다. '뼈속까지 행복해지는 삶'을.


이 것이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누군가에겐 멋져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본 심리테스트에서 '옹졸한 평화주의자'라고 나온 나에게도 내 인생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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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1년 동안 식당에서 일하면서 빚을 갚았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랜서, 멋있는 단어다. 하지만 환상은 항상 생각보다 빨리 깨진다.

조금 덜한 압박,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좀 적다는 건 장점이다. 하지만 대인관계가 힘들어 퇴사한 사람이라면,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을지도 모른다.

클라이언트라는 사람들도 결국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회사는 직급이 있고, 보는 눈이 많으니 제 멋대로 하는 경우는 적다. 하지만 그들이 프리랜서를 상대할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 입장에서는 널린 게 프리랜서 아닌가. 안되면 다른 곳에 전화하면 그만이다.

가장 무서운 부류는 '숨 쉬고 있을 때 까지는 시켜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건지, 수정에 수정을 요청하면서 가책 한 방울 느끼지 않는 쪽이다. 이럴 땐 '아, 회사에 있을 걸..'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도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게 되는데, 가끔 리더의 자질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 사람이 나와 가치관까지 비슷하다면,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또 다른 일거리를 맡기려고 할 거다. 작은 임무가 곧 큰 임무로 이어지는 거다. 이런 클라이언트를 몇 군데 보유하게 된다면, 일단 밥 먹고 사는 건 문제없다. 이제 2단계로 넘어갈 차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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