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사진만 보면 보급형 모나코로 보이실지도? 그러나 여긴 많이 심심한 도시고...
이 재미없는 도시를 두 번이나 간 건 바로 여자 친구 때문인데, 이제 다시 갈 일이 안 보이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숨겨진 힐링코스 때문일 거다.
뉴스에서 '활화산의 재가 집으로 날아와 꽂히는 곳'을 보신 기억이 있으실까? 바로 그 사쿠라지마가 있는 가고시마다. (멀리서 날아온 화산재가 빨래에 묻어 있는 익스트림한 광경을 즐기실 분들에게 추천)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신세계가 펼쳐지는 곳이 바로 여기다.
재미없는 상황에서도 혼자 노는 법 찾길 잘하는 난 어느 날부터 규슈 올레코스에 꽂히기 시작했다.
규슈 올레코스는 우리가 아는 그 제주 올레코스의 형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직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가 꼭..
제주올레가 일본의 규슈에 만들어졌다. 제주의 곳곳을 걸어서 여행하며 제주의 속살을 발견하는 제주올레처럼, 규슈올레는 웅대한 자연과 수많은 온천을 가지고 있는 규슈의 문화와 역사를 오감으로 즐기며 걷는 (이하 재미없어서 생략)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다케오 코스,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 오쿠분고 코스, 아마쿠사-마츠시마 코스, 모나카타-오시마 코스, 가라쓰 코스, 우레시노 코스, 아마쿠사-레이호쿠 고스, 야메 코스, 구루메-고라산 코스, 미나미시마바라 코스, 이즈미 코스,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지쿠호-가와라 코스, 사이키-오뉴지마 코스, 후쿠오카-신구 코스, 미야자키-오마루가와 코스, 시마바라 코스
21개 코스 중에 내가 간 곳은 세 군데. (구루메-고라산 코스, 기리시마-묘켄 코스, 이부스키-가이몬 코스) 이번엔 기리시마와 이부스키 코스를 보여드리려 한다. 난이도는 기리시마가 높고, 걷기에는 이부스키 코스가 좋다.
기리시마-묘켄 코스
거리 : 11km
소요시간 : 4~5시간
난이도 : 중
리플렛 : http://welcomekyushu.or.kr/kyushuolle/photo/pamphlet/kr/1362730846.pdf
이 촌 구석에서 한국에서 보던 로고를 만나 반갑다. 초입 들어서며 '만화 속 배경 같다'라고 생각한다. 숲마다 기운이 조금씩 다른데 이곳은 오르막길이 많아 '비워내기 좋은 사람들의 성지'같은 기분이다.
4절 끝날 때까지 교통 통제하는 경호원 1,2
얼마 안 간 지점에 이런 온천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온천에 신발 벗고 들어가 도시락을 연다. 피톤치드 테러 속에서 도시락 까먹으니 황제가 따로 없다. 이런 작은 행복이 계속 떠날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 준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서로 먹여준다거나 하는 건 전혀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여기 매달린다거나 하는 건 전혀 하지 않았다.
트래킹 할 때는 발목 높은 신발을 꼭 신자. 기리시마-묘켄 코스는 경사가 지속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좁은 길이 많으니 잘 보고 걷는 게 좋다.
온천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높이 36m의 폭포가 나온다.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 장점을 담지 못한 것 같다. 실제 보면 몽환적인 느낌이 2천 배 정도 더 느껴진다. 특히 봄이나 가을 오후에는 폭포에 무지개가 걸리는 것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발 벗고 들어갈 생각을 못한 게 아쉽다. 늘 다녀오고 나면 후회가 남는다.
폭포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와케신사(和氣神社)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거기서 또 조금만 더 걸으면 신사가 나온다.
블라디보스톡 여행 때 성당에 사진 찍으러 들어갔다 어떤 아주머니에게 등짝 맞을 뻔한 적이 있다. 그 후로는 종교 관련 건물은 안 들어간다. 그녀가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던전 앤 드래곤 약수터에서 사진 찍기.
경비병 1
박정민 닮은 동상의 이 사람은 일본이 막부시대가 끝났을 때 왕중심 근대 집권 국가로 재탄생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그의 부인 오료(お龍)와 신혼여행을 왔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아쉽지만 시간이 늦어 좀 더 둘러보지는 못했다. 족욕시설(무료)과 온천 달걀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부스키・가이몬 코스
거리 : 12.9km
소요시간 : 3~4시간
난이도 : 하
일본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JR 최남단역 니시오야마역(西大山駅)에서 출발하는 코스. 사진 찍기도 좋고, 걷기에도 좋은, 커플들에게 추천드리는 코스. 특히 봄에 유채꽃이 역 주변에 핀다는데, 이 때를 노렸어야 했다.
운전대는 내가 안 잡았지만 달릴 맛 난다. 카스테레오에서 Oasis의 노래만 나왔더라면 천국이었을 텐데.
이부스키-가이몬 코스를 포토그래퍼에게 추천하는 이유 1
대부분 평지라서 길 잃을 일이 없는 곳. 이런 사거리가 나와도 길 찾기가 쉬우니 손 들고 건너가면 된다.
나가사키바나(長崎鼻)에서 가이몬다케(開聞岳)로 향하는 해안가를 따라 송림숲이 이어진다. 바다를 가리고 있어서, 여기를 뚫고 나오는 바다를 봤을 때 쾌감이 있다. 송림과 파란 바다 건너편에 보이는 가이몬다케는 그냥 그림이다.
바다를 목적지로 두고 달려온 기분.
약 1킬로에 걸쳐 감람석 함유한 모래사장이 이어지는 해안이다. 오리빈은 가이몬다케의 분출불 속에 함유된 광물로, 긴 세월 속에 분출물이 파도에 깎여 투명한 황갈색을 띈다고 하는데, 안 봤다.
커플들에게 추천하는 이유 1
가고시마를 무시하고 갔다가 제대로 한방 맞은 이부스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힐링을 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이부스키 코스를 다 돌아보지 못했는데, 나머지 코스인 가이몬 산록 향료원, 가가미이케, 히라사키 신사도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당부를 드리자면 이 코스들을 혼자 가시는 것보다 손 잡아줄 누군가와 간다면 깊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손 잡는 사이가 아니라면 멱살이라도 잡..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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